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종려나무를 흔들고 옷을 길에 깔며 환영하는 군중의 마음이 사뭇 다른듯 하다. 죄와 죽음 세력에서 해방시키려는 마음과 로마 권력에서의 해방을 기대하는 마음이 서로 달랐기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던 자들이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로 변질되지 않았던가! 종려주일의 주인공은 ‘내가 다 이루었다’를 선포했고… 21세기의 돈 사랑, 음욕과 자기숭배를 거슬러 사는 신자 마음이 주님 마음을 조금더 닮아가기 위해 큰 원리-사랑을 확인해 보자!
구약 모든 율법의 중심은 십계명이며(출 20, 신5), 이를 주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둘로(마 22:37-40) 요약하셨다. 그리고 지상사역을 매듭지으며 새 계명(요 13:34)을 주셨다. 소위 10-2-1의 교훈을 신자 생활의 큰 원리로 주셨다. 새 계명의 순종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교훈들의 매듭이다. 이 매듭을 잘 짓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속에 주님의 마음이 야금야금 들어찬다. 영글어 가는 주님의 마음이 몸밖으로 나오며 하늘의 화장품 냄새가 곁의 사람에게로 넘실넘실 흘러 들어간다.
그레이스 교회 장로님 내외분이, 노스케롤라이나 한 직장인이, 나성의 한 여성이 나름들 대로 반석 교우들 사랑을 물질로 포장하여 보내 오셨다. 사랑의 은은한 향기가 우리를 감싸는 가운데, 네팔 선교사님 내외분이 사랑에 감격하며, 사랑을 쏟아붓고 가셨다. 받은 선교 사례비를 목사의 바울선교지 탐사 여행 후원비로 내어 놓으셨다. 계속 거절이 되자 한 밤을 지내고 건축헌금으로 봉헌하셨다. 이것은 헌금이니 거절되지 않을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요일 3:18)의 사랑들이었다.
이웃 사랑의 내용이 혀만이 아닌 행함이듯이 사랑의 대상도 나를 사랑하는 자만이 아닌 나를 오해하거나 미워하는 자도 포함되어야 한다. 모세는 자기의 결혼을 저주한 자매를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하였고, 한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때에 자기를 오해한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였고, 다윗은 자기의 충성을 살인으로 보답하는 지도자의 위치를 존경하였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 군중과 사울을 축복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주님의 그 마음, 신앙 선배들의 그 마음을 닮아가고 싶다. 닮음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 고난 주간의 새벽집회를 이용하자. 목요일의 세족식 및 성찬식을 이용하자. 그 마음과 실천은 내 힘이 아니다.
- 박성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