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군종장교를 지내면서 많은 군인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과연 이런 일을 허락할 수 있냐”고 질문한 분도 있었다. 삿6:13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고난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기드온이 하나님께 질문했던 이 질문 앞에 서게 만든다. 고난 속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1. 감정적 반응
이것은 고난 속에 있는 자들의 첫 반응이다. 이세상 누구도 고통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삶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이 되기 쉽다. 이런 자들을 향해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요 11장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앞에 고통당한 자들을 정죄하지 않고 함께 우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고난 앞에서 정답을 주기 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지적인, 신앙적인 정답이 먹히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으로 슬픔과 고통에 함께 해 주어야 한다. 함께 한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다.
2. 지적 반응
고난 앞의 질문은 언제나 “왜”이다. “왜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나? 악을 허용하시나?” 몇몇 사람들이 고통과 악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명을 시도해 보지만 이사야55:8-9은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고 말씀한다. 여러 과정을 거치겠지만 결국 우리가 내릴 결론은 “우리는 알 수 없다”이다. 우리는 지적인 답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3. 영적 반응
C.S.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즐거움으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으로 말씀하신다. 하지만 고통을 통해서는 소리를 외치신다.
그것은 귀가 먹은 세상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은 신자들을 성숙시킨다. 고통을 받는 그 순간은 너무나 힘들다.
그러나 죄 많은 세상에서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따르려면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이 세상의 고통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통해 선을 행하신다. 고통 가운데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을 기억하자. 감정적으로, 지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영적으로 고통을 이겨 나가야 한다.
1. 감정적 반응
이것은 고난 속에 있는 자들의 첫 반응이다. 이세상 누구도 고통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삶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이 되기 쉽다. 이런 자들을 향해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요 11장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앞에 고통당한 자들을 정죄하지 않고 함께 우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고난 앞에서 정답을 주기 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지적인, 신앙적인 정답이 먹히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으로 슬픔과 고통에 함께 해 주어야 한다. 함께 한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하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다.
2. 지적 반응
고난 앞의 질문은 언제나 “왜”이다. “왜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나? 악을 허용하시나?” 몇몇 사람들이 고통과 악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명을 시도해 보지만 이사야55:8-9은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고 말씀한다. 여러 과정을 거치겠지만 결국 우리가 내릴 결론은 “우리는 알 수 없다”이다. 우리는 지적인 답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3. 영적 반응
C.S.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즐거움으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으로 말씀하신다. 하지만 고통을 통해서는 소리를 외치신다.
그것은 귀가 먹은 세상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은 신자들을 성숙시킨다. 고통을 받는 그 순간은 너무나 힘들다.
그러나 죄 많은 세상에서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따르려면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이 세상의 고통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통해 선을 행하신다. 고통 가운데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을 기억하자. 감정적으로, 지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영적으로 고통을 이겨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