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가만히 정체된 상태가 이니라 외적으로 표현하고 드러내는 동적인 상태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성의 목소리를 제기하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이 어디에 근거하느냐 하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너무나도 중요함을 성경이 누누히 가르쳐 주고 있다. 오늘 본문은 그 진리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부활의 주님이 세번째로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특별히 자신의 실패감과 절망감에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시며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신 주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당신의 사랑이 무엇인지 확인시켜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럼 베드로가 확인 받아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 “요한의 아들 시몬아 그 누구보다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디베라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질문은 부활의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절망과 패배감에 있던 베드로를 회복시키기에 충분한 주님의 마음이 심어져 있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과 꿈과 열정의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왜 세번에 걸쳐 사랑하냐고 물으셨을까? 주님이 요구하신 사랑은 베드로 스스로 만들어낼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의 힘으로 사랑하려했던 베드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는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사랑할수 없음을 주님은 가르쳐 주길 원하신다. 주님이 그를 사랑하시기 전에 그는 주님을 사랑할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길 원하신다.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위해 고통 당하시고 수치와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나의 열정, 나의 행동은 베드로의 실패로 반복 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주님은 물으신다. “네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죽음을 통해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진정으로 아느냐?” 이것은 우리 모두를 향한 은혜 안에 사는 성도로의 부르심이다.
- 조한영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