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내려가게 하심도 은혜다.
성령은 우리를 올라가게 하시지만 때로는 내려가게도 하신다.
본문은 목자가 가축떼를 골짜기로 인도하여서 편히 쉬게 하심 같이 주의 영, 곧 성령께서 자기 백성들을 골짜기로 내려가게 하사 쉬게 하셨다고 하셨다.
성령은 우리를 높은 정상으로 올라가게 하실 때가 있고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게 하실 때가 있다.
성령이 우리를 올라가게 하실 때 지혜롭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부하게 하시고 승리케 하신다.
우리의 상황 조건을 뛰어넘어 높이 비상하며 올라가게 하신다. 주님을 위해서도 높게 들어 쓰신다.
성령이 우리를 내려가게 하실 때 우리를 약하게 하시고 가난하게 하시고 낮아지게 하신다.
주님을 위해서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갑갑한 방에 갇혀 있듯이 침묵만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올라가게 하는 것도 은혜요 축복이지만 내려가게 하시는 것도 은혜요 축복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교만해지기 전에 내려가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가 넘어지기 전에 내려가게 하신다.
성령님은 심령이 메말라질 때 내려가게 하신다.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 식어지기 쉽다.
일이 많아지고 큰 일을 하다보면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 식어지기 쉽다.
가장 두려운 일은 갈망이 식어지는 것이다.
이런 때에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내려가게 하신다.
성령이 내려가게 하심도 은혜다.
올라 갈 때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시기도 한다.
오늘은 내려가게 하심의 숨겨진 은혜를 나누고저 한다.
1. 쉼을 누리라고 내려가게 하신다.
이사야 63:14 “여호와의 신이 그들로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가축도 골짜기에 내려가야 쉬게 된다.
높은 곳에서는 쉼을 누리지 못한다.
사람도 낮은 곳에 내려가야 쉼을 누리게 된다.
인생이 높은 곳에서 결코 누리지 못했던 쉼을 낮은 곳에서만 누릴수 있게 된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를 낮아지게 하셔서 쉼을 누리게 하신다.
성령은 우리가 넘어지기 전에 내려가게 하신다.
정상에 올라가면 산 꼭대기에 있는 나무처럼 바람을 많이 탄다.
사람들이 도와주려는 사람도 많지만 헐뜯는 사람도 많아진다.
이런 때 흔드는 사람이 많아서 넘어지기 쉽다.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넘어지기 전에 내려가게 하신다.
우리의 육신도 그렇다. 어느 목사님이 너무도 바쁘게 사역하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도 해야 할 일들이 눈 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지금 얼마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왜 여기 이렇게 누워서 답답하게ㅐ 지내야 합니까?
하나님께 질문하고 자신에게도 질문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셨다.
하나님이 자기를 쉬게 하시려고 쓰러지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 계속 달렸다면 아마 회복 불가능의 지점까지 갔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자기를 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고 감사했다.
낮아지고 내려갈 때는 힘든다.
그러나 더 이상 떨어질데도 없이 낮아지게 되면 드디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낮은 곳에 내려가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쉬라.
낮은 곳에서 주님의 은혜를 갈망해 보라.
낮은 곳에서만 맛 볼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새록 새록 와 닿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몸과 마음에 쉼을 주시기 위하여 내려가게 하시는 것을 감사하라.
2. 겸손케 하시려고 내려가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를 겸손케 하시려고 내려가게 하신다.
벧전 5;5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
사람은 누구나 높아지고 일이 잘 되면 교만해 지기 쉽다.
끝까지 교만하면 하나님께 버림 받는다.
가장 두려운 일은 하나님께 버림 받는 것이다.
이 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
버림 받기 전에, 늦기 전에 성령께서 우리를 내려가게 하시는 것이 은혜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하심은 우리의 교만한 자아를 깨트리시고 겸손케 하기 위함이다.
육의 사람은 본질적으로 높아지기를 원한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부족을 느끼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로 살기를 원하신다.
바울은 자기를 겸손케 하시려고 내려가게 하심을 알았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 사도는 참으로 많은 계시를 받았다.
특별히 그는 셋째 하늘에 가 본 경험이 잇다. 곧 천국에 가서 말할수 없는 놀라운 신비와 영광을 체험했다.
이렇게 자신이 받은 계시가 너무 크므로 혹시 자만할가 해서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
그 육체의 가시가 곧 사단의 사자였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사자를 허락하셔서 바울의 육체에 찌르는 가시와 같은 것을 주신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그가 말한 가시가 그의 심한 눈병이었다 말한다.
바울은 이 가시를 없에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다.
바울은 수 없는 병자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리는 능력의 종이었으나 자신의 눈병 하나도 고칠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이렇게 응답하셨다.
“ 바울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오히려 온전하여지기 때문이다. ”
이 말씀을 듣고 바울은 도리어 약한 것을 자랑하고 약한 것을 크게 기뻐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항상 자신에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여러분, 저는 바울이 왜 하필 가시라고 표현했을가? 생각해 보았다.
가시는 가만 있으면 조금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나 건드리면 찔리고 너무 아프다.
이런 가시가 우리에게도 다 있을 것이다.
평소에도 마음이 무겁지만 어쩌다가 그것을 건드리기만 하면 너무 아프고 찔리고 괴로운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깊은 상처 일수도 있고 우리의 고민스러운 문제일수도 잇고 신체적 장애일수도 있고, 자녀 문제일수도 있다.
여러분, 건드리면 아프니까 될수 있는대로 피해가고 싶은 가시가 나름대로 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그 가시가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란다.
그 가시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강해도 교만하면 쓰시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겸손케 하셔서 약점도 강점이 되게 하신다.
당신의 연약함 때문에 겸손해진다면 은혜인줄 믿어라.
겸손해 질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해 지고 강하여진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력을 생산하는 휴버 댐을 가 본 적이 있다.
280 m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힘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전력을 생산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겸손할 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강하여진 다는 것을ㅇ 깨달은 적이 있었다.
가축들은 골짜기에 내려가야 많은 풀을 먹을수가 있다.
믿음의 사람들도 내려가야 영의 양식을 풍성히 먹을수가 있게 된다.
낮은 곳에 내려갈수록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은혜를 사모하게 된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해 주신다.
높은 곳에는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낮은 곳에 물이 고이듯 우리의 심령도 낮아질수록 주의 은혜가 임하고 머무른다.
성령충만은 부요한데서 얻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데서 얻는다.
크리스챤 작가 프레버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시기 전에 먼저 우리 영혼을 완전히 비우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 영혼은 가난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려 할 때 먼저 우리를 낮추신다.
3.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내려가게 하신다.
이사야 63:14 “주께서 이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은 다르다.
오히려 우리를 낮은 곳으로 인도하사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신다.
우리가 가장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때가 언제인가?
우리가 가장 주님을 기뻐할 때가 아닌가?
우리가 가장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살 때가 아닌가?
우리가 내려가서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가 아닌가?
우리가 겸손히 주님을 섬길 때에 주의 이름이 가장 영화롭게 된다.
우리가 겸손히 주의 이름을 높일 때 주의 이름이 가장 영화롭게 된다.
우리가 주님이 하셨다고 자랑하며 감사할 때 주의 이름이 가장 영화롭게 된다.
성령님은 우리를 통해서 주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화롭게 되도록 인도하신다.
지금 당신을 통해서 주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화롭게 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있는 자리가 비록 낮은 자리일지라도 은혜의 자리인줄 믿고 감사하기 바란다.
우리를 통해서 주의 이름이 영화롭게 될 수만 있다면 그 곳이 가장 가치있는 곳이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다.
주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 구원받은 존재다.
우리가 높아지든지 낮아지든지 이 목적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내려갈 때 그것이 은혜인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마치 하나님이 때리시는 것과 같고, 실패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다.
높은 자리에서 떨어질 때, 부요한 자리에서 가난하게 될 때, 건강하다가 병들어 눕게 될 때,
우리는 마치 은혜에서 멀어진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우리를 낮추심이 은혜인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 우리를 겸손케 하시고 은혜가 메마르지 않게 하시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 당신은 어떤 자리에 있는가?
올라가고 있는가? 인생의 정상에 있는가? 감사하고 기뻐하라.
은혜가 메마르지 않도록 늘 겸손하고 은혜를 더욱 갈망하는 자가 되라.
지금 당신은 내려가고 있는가? 인생의 골짜기에 있는가?
성령님이 골짜기에 있을 때 주시는 은혜를 누려라.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라.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는 올라가는 것도 은혜요 내려가는 것도 은혜다.
성령이 내려가게 하심도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