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뛰어넘어라.
삶은 장애로 가득차 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는 것부터가 장애를 뛰어넘고 경쟁을 이겼기 때문에 된 것이다.
복중에서도 많은 장애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는 더 많은 장애를 만난다.
삶은 장애물로 가득차 있지만 그 장애를 뛰어넘으면 승리자, 성공한 사람이 된다.
장애를 뛰어넘지 못하면 실패자, 패배자가 된다.
우리가 큰 일을 하려고 하거나 보람있는 삶을 살려고 하면 더 많은 장애물을 만나다.
가장 보람있는 일, 가장 큰 일은 예수 믿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일에는 장애가 많다.
여러분들이 처음 예수 믿으려고 할때 방해하는 세력이 많았을 것이다.
그 장애를 뛰어넘고 예수 믿은 것이 얼마나 큰 승리며 축복인가?
그런데 예수 믿은 후에도 믿음이 업그레이드 되려고 하면 장애가 있다.
우리는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믿음의 장애를 뛰어넘는 자는 인생의 모든 장애를 뛰어넘게 된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장애를 피하려고 하지말고 장애를 뛰어넘도록 지도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서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고 눈을 뜨고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사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 말씀이 나온다.
1. 내적인 장애를 뛰어넘어라.
46-47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바디매오는 출생부터 장애물을 타고 난 사람이다.
바디매오 의 “바”는 아들 이라는 뜻이다. 바디매오는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디매오“ 는 “불결한 자” 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도 따로 없이 불결한자의 아들 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살아갔다.
바디매오의 인생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내적 불행과 영적 불행이 지배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그는 맹인이었고 거지였다.
당시 유대인들의 관념으로는 맹인은 부모나 자신의 죄 값으로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지 역시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구걸하고 있는 바디매오를 볼 때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정죄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무엇보다 바디매오 자신이 나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 라고 자신을 정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죄의식, 열등감, 낮은 자존감 은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내적 장애물이다.
그가 앞을 보지 못하는 불편함, 그런 장애는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가진 내적인 장애는 참으로 예수님을 만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큰 내적인 장애는 깊은 열등감, 낮은 자존감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열등의식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들뿐 아니라 쉽게 상처를 받는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준다.
우리의 내적인 장애는 교만일수도 있다.
교만한 사람은 문제를 직시하려고 하지 않고 문제를 포장하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을 향하여 도전하고 진정한 도움을 구해야 하는데 핵심을 피해 가려고 한다.
오히려 그럴듯하게 미화하려고 한다.
열등감, 죄의식, 상처, 교만, .. 다 뿌리가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내적 장애를 뛰어넘어야 한다.
내적 장애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자신을 포장하려 들지말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내어 놓아라.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를 내어 놓아라.
주님은 당신이 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주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받아 주시는 것이다.
바디매오는 내적장애를 뛰어넘었다.
그가 구걸하기 위해 길에 앉았다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자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한 사람이 그에게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 “ 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말을 듣자 바디매오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요 불결한 자의 아들이라는 죄의식과 깊은 열등감을 뛰어넘은 것이다.
감히 자기 같은 사람이 주님을 만날 수 있을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뛰어넘은 것이다.
바디매오는 자기 변명을 하거나 둘러가려고 하지 않고 구원의 핵심, 문제해결의 핵심을 향하여 도전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하고 부르짖었다.
내적인 장애를 뛰어넘는 사람은 구원의 핵심을 향하여 도전한다.
그것은 바로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주님께 긍휼을 구하라.
자신의 부족을 보거든 주님의 긍휼을 구하라.
자신의 죄를 보거든 주님의 긍휼을 구하라.
자기 인생의 상처나 문제를 보거든 주님께 긍휼을 구하라.
주님은 긍휼을 구하는 자를 거절하지 아니하신다.
주님은 긍휼을 구하는 그 어떤 사람도 거절하신 적이 없다.
주님은 긍휼을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해 주신다.
주님은 긍휼을 구하는 자를 위해 그 발걸음을 멈추어 주셨다.
긍휼 받을 기회를 놓지지 말아라.
맹인 바디메오는 기회를 놓지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멀어져만 가는 예수님을 향하여 그는 큰 소리로 계속 부르짖었다.
주님의 응답이 늦어져도 긍휼의 기회를 놓지지 말아라.
오늘 우리도 주님의 긍휼을 받을 기회를 놓지지 말아야 한다.
2. 외적인 장애를 뛰어넘어라.
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대메오는 외적인 장애도 뛰어넘었다.
외적인 장애는 무엇이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각기 한 마디씩 하면서 그를 꾸짖었다.
“시끄럽다. 너 같은 저주 받은 사람이 어디 감히 예수님을 불러?”
“눈 뜬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기 어려운데 맹인이요 거지인 네가 바쁘신 예수님을 왜 불러?”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그를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맹인이 예수를 믿는데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를 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그 장애를 뛰어넘었다.
그는 더욱 크게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쳤다.
그의 인생에 예수님은 절대로 포기할수 없는 분이었다.
그의 인생에 예수님은 가장 절실한 분이었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데 사람들이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를 안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도 사람에게 상처 받아서 나오지 않는 분들이 많다.
아마도 여러분이 전도해 보면 그런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각기 다른 성품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아무리 조심을 해도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들이 방해 한다고 포기해야 하는가?
당신에게 예수는 사람들 때문에 포기할 정도의 분이신가?
당신에게 교회는 사람들 때문에 포기할 정도의 가치인가?
예수가 당신 인생에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임을 안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가 당신 인생에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를 안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신앙생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바디메오는 예수가 메시야 인것을 믿었다.
그는 예수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 인 것을 믿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고 부르짖은 것이다.
예수가 메시야 인것을 믿는다면 구주인 것을 믿는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방해해도 예수를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를 너무 값싸게 믿으려고 한다.
조금만 불편하면 포기하고 조금만 상처를 받아도 포기하고 조금만 어색해도 포기한다.
예수는 상처를 받아도 믿어야 한다.
예수는 사람들이 믿지 못하게 방해해도 믿어야 한다.
교회는 불편해도 와야 하고 어려워도 와야 한다.
이런 외적인 장애를 뛰어넘어야 승리자가 된다.
3. 장애를 뛰어넘으면 승리한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드디어 예수님이 머물러 서서 바디매오를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하셧다.
예수님이 직접 그를 부르시지 않고 이렇게 하신 것은 바디매오를 꾸짖고 잠잠하라고 햇던 사람들이 무안해 하지 않도록 배려하신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전에는 바디매오를 꾸짖던 자들이 이제 바디매오를 향하여
안심하라 선생님이 너를 부르신다 고 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 달려갔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즉시 순종하는 것이 진짜 순종하는 것이고 은혜의 기회를 놓지지 않는 것이다.
주님께 나아가는데 장애 되는 것을 벗어 던져야 한다.
바디메오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주님께 달려갔다.
그에게 겉옷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지만 주님께 빨리 가기 위해서
겉옷을 벗어 던진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 은혜받을 기회를 놓지지 않기 위해서 걸림이 되는 것을 그 어떤 것이라고 벗어 던져야 한다.
주님께 나아가는데 걸림이 되는 우리의 겉옷이 무엇인가?
체면, 자존심, 물질, 자녀, ... 그것을 벗어던져야 한다.
긍휼의 기회를 놓지지 않기 위해서 겉옷을 벗어던지는 이 시간이 되기 바란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다.
주님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아셨지만 그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고백하기를 원하셨다.
말은 마음을 확정하는 도구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입을 열어 분명하게 구해야 한다.
그는 “선생님, 보기를 원하나이다”. 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하셨고
그는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랐다.
이것이 장애를 뛰어넘은 믿음의 결국이다.
그는 보게 되었다. 그는 영적인 눈도 뜨게 되었다.
구걸하던 거지가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었다.
인생에게 가장 위대한 발견은 예수가 그리스도 이신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다음 위대한 발견은 예수 믿고 변화된 새로운 자기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 다음 위대한 발견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바디메오는 이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디매오가 이런 놀라운 발견을 한 것은 그가 믿음의 장애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 인생이 바디매오 처럼 선천적 후천적 불행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믿음의 장애를 뛰어넘기만 하면 당신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생이 될 것이다.
믿음의 장애를 뛰어넘어라.
내적인 장애를 뛰어넘어라.
깊은 죄의식, 열등감, 교만, 비교의식,,,을 포장하려 들지말고 문제해결의 핵심을 향하여 가라.
주님께 긍휼을 구하라.
외적인 장애를 뛰어넘어라.
사람들의 방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뛰어넘어라.
겉옷이라고 하는 장애도 뛰어넘어라.
믿음의 장애를 뛰어넘으면 인생의 모든 장애를 뛰어넘고 당신은 승리자가 될 것이다.
이 세상뿐 아니라 영원에까지 이르는 승리자가 된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모든 장애를 뛰어넘고 신앙의 승리자,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