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가르치는 부모에게 난감한 경우는 “다 알아”라는 소리를 들을 때다. 알기에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말씀을 듣기 싫고 배우기 싫을 때 종종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유익한 것을 가르치고 싶은데, 더이상 가르칠 수가 없기에 심히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했다. 행위 언약의 내용으로써 고상한 말씀인 모세 율법을 받았고, 그 말씀으로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 나라의 특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자들이었다.
말씀을 헛소리로 여기며 자기 만족에 빠진 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 주인이 아니라, 더러운 욕심이 주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언약을 깨뜨렸다. 간음이 정상행위로 여겨질뿐만 아니라 추천대상으로 높이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악인의 꾀를 좇다가, 죄인의 길을 걸으며 마침내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것이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은밀한 곳에서 저지르는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이 인격으로 자리잡았다.
죄악의 습관화는 멸망이다. 썩을대로 썩어버린 백성의 모습을 습지 바위틈에 감추어 두었던 베 띠를 사용하여 보이셨다. 건조한 곳에 보관하여야 베 띠의 역할을 감당할 터인데, 물가에 파묻어둔 그 띠는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 썩은 냄새 덩어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가 원수의 손에 넘겨졌다”라고 슬퍼하신다. 그리고 새로운 언약을 때가 되면 세울 것을 약속하신다. 그 약속대로 예수께서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그리스도되심을 확증하시며 성령의 인치심으로 은혜언약을 맺으셨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자들은 은혜언약속에 들어온 자들이다. 행위언약 속의 이스라엘과 은혜언약 속의 이스라엘은 똑같은 죄성을 지닌 자들이나 크게 다르다. 그들은 말씀을 헛소리로 여기며 죄악지적을 반박하나 우리는 참소리로 여기며 용납한다. 멸망예언에 무감각했으나 우리는 떨림으로 받아 들인다. 회개촉구에 핑게를 대나, 우리는 자백한다. 재촉하는 회개의 촉구에 우리는 내일로 미루지 않고 지금 적용하며 개혁에 헐떡인다. 특히 인간의 말에 주눅들거나 우쭐대지 않고 오직 그말씀만을 믿을뿐이다.
오직 주님의 그날 칭찬을 바라며, 더욱 의의 말씀에 헐떡일뿐이다!
- 박성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