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죄에서 불러냄을 받은 신자들의 모임으로서, 주인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잘 드러내야 할 지상의 천국이다. 천국의 영광스런 모습을 잘 드러내기 위하여 교회는 끊임없이 그 말씀으로 가다듦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 안에 직분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3차 선교여행 길에 밀레도 항구에 들려 30마일 북쪽의 에베소에 사람을 보내어 장로들을 데려와서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다.
17절의 장로들이 28절에서 감독으로 불려진다. 초대교회에서는 장로와 감독이 혼용되며, 같은 직분을 가르킨다. 이 직분자들을 교인들이 선택하여 세우는 듯 하지만 그 뒤안길에 성령의 세밀한 손길이 작용하고 있기에 “성령이 여러 교인들 가운데서 일부의 사람을 장로(=감독)로 세웠다”고 선포한다. 성령의 섭리 가운데 세워진 직분이기에 하늘의 영광을 머뭄고 있다. 처음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만 예정된 것이 아니고, 장로로 부름받은 것도 창세 전의 작정이라고 할 때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마치 사울을 불러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 삼으신 것이 영광스러운 것처럼!
장로들은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산 바된 교회를 보살피는 자들이니 영광스러운 자들이다. 부모의 피로 말미암은 육체의 생명은 존귀하다. 독립기념일 피치트리 10km 경주에 참여하는 길에 손녀를 만나 정겨운 시간을 가졌는데, 이제도 눈에 삼삼하며 너무 보고 싶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다. 백 살 미만 살다가는 육체지만 얼마나 보배로운 생명인가! 하물며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얻은 거룩의 백성이야 말로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이며, 그들을 보살피는 사역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말씀의 꼴을 먹이는 목자의 보조역을 감당하며, 악한 짐승의 밥이 되지 않도록 감독하는 사역은 천사도 흠모할 사역아닌가!
장로들의 이름 자체가 영광스럽다. 장로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단어가 쟈켄(zaqen)인데 수염이라는 뜻을 가진다. 수염은 노인의 권위와 영광을 상징한다. 구약에서는 자기 종족을 대표하는 권위의 직분으로서 모세와 함께 바로를 찾았는가 하면 시내산 언약 식탁에 70 장로가 영광스럽게 참여하지 않았는가! 신천신지 언약 성취 보좌에 둘려 24 장로가 영광스럽게 착석하지 않겠는가(계 4: 4)! 우리 모두가 영광스러운 자리를 사모함은 아주 선한 일이다!
- 박성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