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장면이 나온다. “내가 죄인입니다”를 가슴치며 회개하는 자에겐 “네가 의인이다”의 응답을 주님으로 부터 받았고, “내가 의인입니다”를 자신있게 자랑하는 자에겐 “네가 죄인이다”의 정죄를 받았다. 자신의 의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자가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에 자기의 주인직을 주님에게 양도하며 인생의 방향을 바꾼 우리는 계속하여 회개하며 주님이 주인되시도록 해야 한다. 마치 무연깨스를 주입하도록 만든 차는 계속 그것만을 사용해야 움직이듯이, 이미 목욕한 자는 계속 발을 씻어야 한다.
그런데 계속 회개하는 일이 쉽지 않다. 자기 양심을 너무 믿기 때문이다. 요나의 양심속에 심겨진 의는 죄악의 성읍 니느웨가 매서운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죄의 댓가를 정확히 치루어야지, 회개한다고 용서를 쉽게 베푸는 하나님을 용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의는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비교에서 나온 의이다. 전자는 언약이 있고, 예배가 있고, 십일조가 있는데,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강포와 우상숭배와 음란이 가득차 있기에! 이런 비교가 가득찬 심령에서 어찌 회개가 나올 수 있겠는가?
무섭게도 상대적 비교에서 나온 의의 우월의식은 회개의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결국 회개도 나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자. 말씀 안으로 들어가 말씀이 나의 오장육부에 채워질 수 있도록 그 말씀에 주인직을 겸손히 맡기자. 그러면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 주시며, 회개할 내용을 분명히 보여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복된 자이다. 말씀 앞에 자기를 부인하며 회개하는 자는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더욱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영광 나라를 가리키며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선지자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사소한 것으로 근심하는 것을 회개하면서 크게 기뻐하게 된다. 애끓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제사장 주님의 말씀에 힘얻어 우리는 백성을 위해 기도치 않음을 회개하면서 늘 기도하게 된다. 죽음을 정복하시고 평안을 내리시는 왕되신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 우리는 인생을 다스리시는 주님께 맡기지 못함을 회개하면서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말씀으로 회개하게 되면서 선지자 되시고, 제사장 되시며, 왕 되신 주님을 더욱 체험하게 된다.
- 박성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