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부유하게 자랐다. 내 집안은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의 집안이었고, 그로 인해 온갖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평양외국어대학교 졸업 후 북한인민보위대학 연구실장으로 27살 어린나이에 대좌(대령)이라는 별을 달고 장교로 복무할 만큼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권력암투에 휘말려 정치범 수용소에 갔다. 그 수용소는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생활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순간에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지만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대한민국에 와서 알게 되었다.
1년 8개월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인간의 잔인함을 보았다. 지상낙원이라던 북한이 얼마나 무섭고 지옥인지, 또한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김일성가문과 김정일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다. 노동을 하면서 계속 머릿속에서 “나도 언젠가는 파리처럼 죽을 수도 있겠구나”를 절감했다. 공개처형 모습을 볼 때는 북한사회에 대한 환멸이 들었다.
수용소에서 나와“금수산 기념궁전”경리과 무역과로 갔다. 그때 중국에 출장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탈북을 결심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독일까지 갔고 거기서 기독교를 믿는 신자를 만났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와서야 나의 집안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의 집안이 3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것을... 해방 전 증조할아버지 형제분들 모두 장로님들이셨고, 할아버지 강선욱 또한 장로였다. 작은 할아버지 강량욱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전에 평양에서 <고정교회> 목사였다.
나의 모든 것,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믿는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먹을 것을 구하러 온 이복형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내용이 있다. 그때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신지라(창45:5)”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저 북한 땅을 구원하는데 앞장서라고 앞서 보내주신 것이다. 북한의 2천 5백만 동포들을 구원하기 위해 3만 천명의 탈북민들을 앞서 보내신 것이다. 나는 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저 북한 동포들을 구원하는데 앞장서며, 진리가 그들을 자유케 할 때까지 요셉같이 살 것이다. 여러분들도 함께 저 북한땅의 동포들을 구원하는데 힘을 보태주시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많은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 강명도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