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성령은 집시들과 함께 계셨다. 비록 엉성한 판자에 비닐을 입힌 예배당이요 먼지가 펄펄 휘날리는 실내이지만 예수님의 피에 감사하며, 목에 핏줄이 보이도록 찬양하는 성도들이 있었다. 그들과 우리가 하나되도록 중간 역할을 한 실력자들이 있었다. 선교사님 내외분과 그들의 따님과 영육간 후원한 반석 성도들의 헌신의 중보가 있었다. 십 인이 한 마음 한 뜻 되어 그들을 힘껏 섬김 수 있었음은 그 중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과 능력의 피가 모든 모임들의 심령들 속에 뜨겁게 흘렀다.
중보자 예수님!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기에,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죄악의 덩어리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히 중간 역할을 하실 수 있었다. 죄없는 피를 대신하여 흘리심으로 성부를 만족시켰고, 동시에 죄인을 아버지 앞으로 이끌 수 있었다. 오직 그 피로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화목하게 되었는데, 수직의 화평만이 아니다. 원수들이 하나되는 수평의 화평을 누리며 서로 하나되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짚시 교회와 반석교회가 하나 되었다. 그 피가 인종과 문화와 지역과 빈부의 장벽을 허문다.
이미 찢기어진 살을 먹고 흘린 피를 마신 우리는 계속하여 먹고 마셔야 한다. 오직 거기에서 나오는 힘으로만이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며 하나 될 수 있다.“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예수님의 피의 절규로 인해 죄가 용서받은 능력을 받은 우리들이기에, 타인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돌로 쳐 죽이는 자들을 축복하던 집사 스데반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자기 두 아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인 자를 용서한 손양원 목사님의 능력은? 예수 피로써 자기를 미워하는 자, 이념이 다른 자를 용납 할 수 있다!
한 반도의 조상들은 당파 싸움중에 한 편의 씨를 말릴 뿐만 아니라 무덤의 해골을 파내어 가루를 만들었는데, 그 저주의 피가 한 반도의 뭇 심령의 혈관 속에 잔인하게 흐르고 있다. 그 저주의 사슬을 끊는 길은 예수를 먹고 마시면서 자기가 먼저 지속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타인을 향한 손가락질을 멈추고 “Bend Me!”를 라버슨처럼 부르짖어야 한다. 그리하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의 복을 성경 약속대로 누릴 것이다. 그 힘으로 주님의 마음을 가지며 진정한 겸손의 실력자가 되지 않겠는가!
- 박성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