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각자는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열심히 일생을 살았는데, 주님께서 “너의 뜻과 나의 뜻은 달랐다”라고 인생 마지막에 선포하신다면 평생의 노력은 너무나 비참하다. 이런 자리에 들지 않도록 주님은 가끔 우리의 삶에 브레이크를 거신다. 독생자의 피값으로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에 적절히 회초리를 드신다. 정신 차리게 하시며 “나의 뜻이 아닌 주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신다. 우리는 얼마나 선택받은 복된 인생인가!
다윗은 자기 뜻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했다.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위해 지도자들과 의논했다(1절). 정예부대 삼만 명을 모았으며, 새 수레와 흠없는 소들을 마련했고(7), 모든 악기를 동원하며, 온 몸으로 찬양했다(8). 나름대로 영육간에 최선을 다했는데, 제대로 얻어 맞았다. 운반 책임자인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즉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소들이 펄쩍 뛰면서 땅으로 떨어지는 궤를 붙잡은 것이 빌미였다(9).
이에 다윗은 자기 자신에게 무척 화를 내면서, 하나님을 심히 두려워 하며, 자기 방법대로 운반하려던 계획을 즉시 멈춘다. 그리고 주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말씀에 비추어 재 검토 하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선한 목적을 가졌더라도 선한 방법으로 수행하지 않는 것을 주님은 받을 수 없음을 재 확인하지 않았겠는가! 일이 제대로 풀려 나가지 않을 때 “깡다귀”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목적뿐만 아니라 방법까지도 계시된 말씀을 따라 재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언약궤 운반을 주님 말씀대로 운반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반드시 괘에 있는 고리에 막대를 끼어서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게 되어 있었는데(민 4:15), 다윗은 불레셋의 풍습을 따라 새 수레에 실었다(삼상 6:7). 아마 좀더 빨리 운반하려고 한듯 하다. 효과적으로 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 뜻”대로 하는 것이다. 아울러 성물을 만지면 죽는다는 규례를 웃사는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흙먼지의 땅보다 죄악의 손은 더욱 더럽다.
우리의 열심에 주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후손들이 말씀에 헐떡이며, 청빙위원들의 신령한 눈이 열리며, 융자금의 이자가 교육, 선교비로 바뀌어지며, 급한 사고와 혈기에서 건짐을 받으려 40일 연쇄 금식 기도를 선포한다!
- 박성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