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왕상 19:9-18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 평생이다.
하나님이 우리 평생 인도해 주실 것을 여러 번 약속하셨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큰 일을 할 때도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 그것이 왕상 18장의 내용이다.
악한 아합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 때문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바알신을 섬길 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혼자서 바알 선지자 450 명과 대결하였다.
바알 선지자들이 쌓은 제단에는 아무런 표적도 없었으나 엘리야의 제단과 제물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서 여호와 만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셨다.
또한 엘리야가 기도하므로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여시고 그 땅에 비를 주셨다.
엘리야가 이런 놀랍고 큰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인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도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이세벨의 칼날을 두려워하여 도망할 때도 도와 주시며 인도하셨다.
이것이 오늘 19장의 내용이다.
두려워 도망 가는 길도 함께 하시며 도와주셨다.
3절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
* 그가 형편을 보앗다.
어떤 형편인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도, 3년 6개월 닫혔던 하늘문이 열리고 비가 쏟아져도 아합왕은 회개치 않았고
이세벨은 더 악해져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맹세한 형편이다.
그가 이 형편을 보자 두려움이 생겼다. 우리가 무엇을 보는가가 중요하다.
아무리 큰 일을 한 사람도 형편을 보면, 상황을 보면 두려움이 생긴다.
믿음이란 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내 죄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의, 예수의 공로를 보라.
내 약함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것이다.
내 가난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부요를 보라.
내 수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
내 상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라.
내 병을 보지 말고 라파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했다.
엘리야가 형편을 보자 두려워서 도망했다.
사명을 위해서 도망간 것도 아니고 자기 목숨을 위해 도망했다.
바로 어제 그렇게 큰 일을 행하였던 능력의 선지자, 불의 선지자 가 하룻 사이에 이렇게 목숨을 위해 도망치는 비겁한 자가 되었다.
아무리 큰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도망가는 비겁쟁이가 될 수 있는 우리는 연약한 존재다.
얼마나 급하게 도망했던지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그가 남유다에 속한 브엘세바까지 갔다.
하나님은 그가 브엘세바 까지 도망쳐 가는 길에도 함께 하시고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담대하게 큰 일을 할 때에나 비겁하게 도망갈 때에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엘리야는 브엘세바에서 사환을 거기 머물게 하고 혼자서 광야로 하룻 길쯤 갔다.
하나님은 깊은 실의에 빠져서 홀로 광야 길을 가는 엘리야와 함께 하셨고 그를 인도하셨다.
엘리야는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였다.
4절 “자기 자신은 광야로 하루 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목숨을 위해 도망친 그가 이제는 죽여 달라고 한다. 이런 모순이 인간의 적라라한 보습이기도 하다.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한 말은 자기가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이 침체에 빠지고 실의에 빠지면 대개 자기가 아무 쓸모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차라리 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마 우리 같으면 이런 엘리야에게 호통을 칠 것이다.
“야, 너 갈멜산 일을 벌써 잊었냐? 내가 너를 통해 그렇게 큰 능력을 나타내 주었는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 “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고 가장 합당한 은혜로 도우시고 인도해 주셨다.
* 먼저는 그를 깊이 잠들게 해 주셨다.
피곤하고 기력이 쇠하여 졌을대, 죽고 싶을 때 가장 좋은 치유책의 하나는 잠자는 것이다.
엘리야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갈멜산에서 불이 내리기까지 물론 그가 믿음으로 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했지만 그러나 혼자서 아합왕과 그 많은 바알 제사장들과 대결하는 그가 얼마나 혼신의 힘과 모든 말초신경까지 동원되어서 사역했을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아무 열매도 없어 보이는 듯 하니 얼마나 지쳤겠는가?
사람이 그런 때에 깊이 잠을 자고 나면 한결 힘을 얻게 되고 마음에 위안과 새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그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
* 천사로 하여금 그를 어루만지게 하셨다.
어루만지다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효과를 느끼도록 두드려 준다 라는 뜻이다.
천사의 어루만짐을 받은 것은 최고의 맛사지를 받은 것이다.
엘리야의 날카로워진 신경들이 편안하게 되고 몸도 마음도 한결 힘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얼마나 하나님의 돌보심이 세밀하신가?
* 물과 빵을 먹여주셨다.
천사는 그를 만져 준 후에는 이제 일어나 먹으라고 했다.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이 있어 그는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워서 잠들었다.
천사가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치료는 이처럼 단순하고 실제적이었다.
잠자게 하고, 만져주고, 먹여주고 마시게 해 주신 것이다.
로뎀 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갈멜산 정상에서는 체험할수 없는 특별한 인도하심이었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 인생 정상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우리 인생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른 것을 다 체험했을 것이다.
이것이 저것을 대신할수 없다.
정상에서의 인도하심과 골짜기에서의 인도하심은 각기 특색이 있고 각기 다른 은혜가 있다.
*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하셨다.
8절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며 40주 40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그 음식물, 곧 천사를 통해서 먹여주신 떡과 물이 밤낮 40 일을 갈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었다.
브엘세바에서 호렙산 까지는 200 마일 정도로서 열흘 길에 불과하지만
그가 밤낮 40일을 금식하며 걸어간 것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의도적으로 인도하신 거룩한 행보였다.
그가 이른 하나님의 산 호렙은 일찍 모세가 이 산에서 떨기나무 불꽅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난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엘리야를 이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하셨다.
자신은 이제 끝장이라고, 더 이상 할 일도, 할 용기도, 없고 오히려 살 용기조차 잃고 두려워하는 그를 다시 사명감으로 일어서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다 마칠 때 까지 인도하신다.
9절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어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으나 아직도 자신을 숨기고 싶은 심리 때문이었는지 한 굴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름으로도 그를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하신 것은 너의 할 일이 남아있으니 더 이상 네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깊은 골짜기에서 끌어올리실뿐 아니라 높이 비상하게 하신다.
엘리야는 대답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그의 응답 속에서 자신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여서 별 일을 다했지만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패배감과 허탈감이 녹아있다.
그리고 나만 홀로 남았다고 하는 깊은 고립감, 혼자라고 하는 고독을 하소연하고 있다.
또한 생명의 위협감을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같은 질문을 두 번 하셨고 엘리야는 정확하게 같은 대답을 두 번 하였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마음 속에 맺힌 것들을 풀어내고 털어낼수 있었다.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알려주는 세 가지 현상이 있었다.
크고 강한 바람 - 보통 강한 바람이 아니라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쪼개는 강풍이었다.
지진 - 엘리야의 발 밑이 흔들릴뿐 아니라 아마 산의 축이 흔들렸을 것이다.
불- 타오르는 큰 불이 휩쓸고 지나갔다.
마치 왕의 행차를 알리는 헤랄드와 같이 여호와 임재에 앞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므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이런 현상 앞에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경외심과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이런 큰 두려움은 아합이나 이세벨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게 된다.
두려움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큰 두려운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시고 어떻게 다시 일으키시고 어떻게 다시 비상하게 하시는지 너무 잘 아신다.
또한 하나님이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도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
나타나신 것은 그의 남은 사역이 조용하게 해야 될 일들임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의 지금까지의 사역은 강한 바람, 지진, 불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해야 될 사역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다.
*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15-16절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네 길을 돌이켜 라는 것은 왔던 길을 되돌아 가라는 말이 아니라 (다메섹은 왔던 곳이 아님) 실망과 두려움으로 왔던 길을 이제 새로운 사명과 할 일을 가지고 돌아가라는 뜻이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라. - 이방의 왕도, 역사도 나의 주권하에 있고 나의 종들의 손을 통해서 이룰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 - 아합에 대한 나의 심판을 예후를 통해서 할 것이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 하나님의 일이 엘리야 너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승자를 세워 하나님의 일이 대를 이어가게 하라.
이 새로운 사명을 주심으로 하나님은 엘리야게에 깨닫게 하셧다.
아합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너는 헛수고 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아합을 심판할 것이다. 나와 바알과의 싸움은 계속 될 것이며 나의 일은 원대한 목적을 향하여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너는 헛수고가 아니라 중요한 한 과정을 했었고, 이제 네 사명은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간다.
사람이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이야마로 낙담과 허무를 이길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명을 남겨두셨다고 하심으로
혼자라고 하는 엘리야의 고독과 고립감을 치유해 주셨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주권적으로 남기신 자들이다. (remnant).
칠천명의 신앙의 동지가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칠천명을 남기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말씀하신 것이다.
엘리야가 도망갈 때는 자기가 실패자인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자기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그가 해야 될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을 말씀해 주셨을 때
엘리야는 용기 있게 도망 온 길을 되돌아 갈수 있었다.
그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워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신 일을 하게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명을 다 할 때까지 도우시며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가 잘 될 때에도 인도하시고 우리가 잘 안 될 때도 인도하신다.
우리가 건강할 때도 인도하시고 우리가 병들었을 때도 인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