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있다. 빙하가 녹아 북금곰들이 방황하며, 공기가 오염되어 호흡에 불편을 겪으며, 데스텐 해변 물가의 박테리아 침입으로 생명을 잃는가 하면 인도 북부는 연일 섭씨 50도가 넘는 혹서로 많은 생명을 뺏으며 사막화 되어간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도 탄식하며 몸의 속량을 기다린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주님의 보배피로 말미암아 신령한 부활의 몸을 덧입기 원한다. 연약의 몸이 강건으로, 죄에 노출된 육의 몸이 거룩한 영광으로 건짐받기를 기다린다.
완전히 건짐받기 까지의 과정이 있다. 이를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며 기다린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다시 살며, 영원히 사는 것을 고백한다. 살아서 재림을 맞이하는 신자들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인 죽음을 맛보지 않고 부활체로 변화할 것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며 중간상태로 들어간다. 그 상태에 머물렀다가 재림시 부활체를 덧입으며 부활한다. 분리된 영혼은 낙원으로 바로 들어가며, 분리된 육체는 무덤에서 흙이 되어 쉰다. 이같이 죽음은 멸절이 아니라 분리이다.
왜 분리의 고통을 신자들은 겪어야 하는가? 죽음은 죄 때문에 들어온 것인데, 죄 문제를 해결하신 확실한 증거로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는가! 만약 예수 믿는 자마다 죽지 않는다면 안 믿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죽음이 누구에게나 다가옴은 언약신앙을 확인함이다. 말씀의 약속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울며 이를 가는 곳(마 8:12)이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첫 부활 예수의 능력을 따라 부활을 덧입는다.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임을 영광 부활 중에서 바라본다 (고전 15:26).
결국 신자가 당하는 분리의 죽음은 영광에 이르는 과정이요 도구이다. 몸을 떠나 낙원에 들어가 주님과 온전히 함께 있는 것이다 (고후 5:8).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뵐 것을 욥은 소망한다 (19:26). 천국의 영광은 임마누엘이다! 때때로 우리의 고집스런 욕망으로 눈이 멀어 주님의 손을 떨쳐 버릴 때가 있지만, 그때는 온전히 늘 체험한다. 그러기에 완벽한 거룩의 상태에 들어가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더불어 즐긴다 (히 12:22-24). 죄의 유혹으로 인한 긴장에서 완전 자유롭다.
누구도 체험하지 못한 중간상태로 곧 들어가면서, 결코 변하지 않는 나침반을 의지한다. 지브롤터 암벽의 No Ultra(더 이상 가지말라)를 인간들은 외치지만 우리는 앞으로 전진한다! 신천지로!
- 박성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