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요한복음 16:20-24
기뻐하는 것이 힘이다 요한복음 16:20-24
기뻐하는 것이 힘이다.
이 세상 기쁨도 다소 힘이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은 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다.
이 세상 기쁨을 추구하다 보면 잡히지 않고 달아나 버린다.
잡혀도 순간적이기 때문에 곧 공허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에게 참된 힘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뿐 아니라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보통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그 넘치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분으로만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기쁨의 원천이시며 기쁨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존재적으로 기쁨이 넘치시는 분이신 것을 말씀하셨다.
시편 16:11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 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나님 앞에는 어떤 기쁨이 있다고 했는가? 충만한 기쁨이다.
이 충만은 우리로서는 상상할수 없는 큰 기쁨이다.
존재 전체가 기쁨인 것을 뜻한다.
또 어떤 즐거움인가? 영원한 즐거움이다.
영원히 영원히 그 즐거움은 쇠하지도 않고 감하지도 않는 즐거움이다.
예수님께서도 기쁨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그 충만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실뿐 아니라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죄 짐만 아니라 우리의 슬픔까지 다 짊어지시고 고뇌하시며 심히 슬퍼하셧다.
이는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슬픔은 예수님이 짊어지시고 자신의 그 넘치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셨다.
요한복음 15:11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잇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을 주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기뻐할 어떤 조건을 이루어 주시는 정도가 아니다.
예수님dl 가지신 그 기쁨 자체를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는가?
충만한 기쁨이다. 이는 우리가 느끼기에 넘치는 정도가 아니다.
예수님 자신의 그 기쁨을 조금도 남김없이 다 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쁨 전체를 우리에게 그대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나의 기쁨을 너에게 주노라” 하신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솟아나는 샘물 같이 우리의 기쁨을 충만케 하신다.
성령님도 기쁨의 원천이시다.
성령은 기쁨의 영이시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성령으로 기뻐하셨다.
성령님이 우리에게도 그 기쁨을 주신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시오 기쁨의 근원이시다.
이 삼위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마치 우리도 자녀들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을 남김없이 주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재능이나 좋은 성품이나 능력이나 있는대로 다 주고싶어하는 것과 같다.
또한 우리를 기뻐하셔서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눅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 하나님도 세상의 부모들처럼 자녀들을 기뻐하신다.
자녀들에게 선물을 주시면서 기뻐하시고 자녀들이 그 선물을 기뻐하며 누리는 것을 보시며 더욱 기뻐하시낟.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을 그의 왕국이다.
왕국을 뜻하는 kingdom 이라는 말에는 은총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하나님은 그 왕국을 은총으로 자녀들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 왕국에 들어가게 해 주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기쁨으로 살게 하신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요 충만한 기쁨이요 항상 기뻐할수 있는 기쁨이다.
그 기쁨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힘이 된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의 힘이 된다.
21절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은 후에는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적하지 아니하느니라.”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고난 당하실 것과 이 땅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근심하는 것을 보시고 너희가 지금은 근심하나 곧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을 여자가 해산 하는 것에 비유해서 말씀하셨다.
여자에게 가장 근심이 되는 것은 해산을 앞두고 있을 때다.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두렵고 근심이 되겠는가?
그러나 여자에게 가장 기쁘고 보람된 것은 해산을 하여 새 생명을 얻었을 때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들어서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다.
* 예수님은 새 생명의 기쁨을 주신다.
여기 해산 할 때의 근심과 고통은 주님의 십자가의 근심과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 낳은 기쁨은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을 주신 기쁨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기쁨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다 이기셨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다.
우리는 새 생명을 받았으므로 기뻐하게 하신다.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으므로 예수님의 그 충만한 기쁨을 받을 존재가 된 것이다.
* 예수님이 다시 만나주시는 기쁨이다.
22절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이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이 만나 주실 때에 기뻐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만나주셨다.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그들을 늘 만나주셨다.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에 제자들의 기쁨이 어떠했겠는가를 우리는 짐작할수 있다.
* 성령의 기쁨을 주신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보내신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해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승천하신 후에 자신과 같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셨다.
보혜사 성령님을 모신 것은 예수님을 모신것과 같은 것이다.
잠시동안 만나는 기쁨보다 함께 사는 기쁨이 얼마나 더 큰 가를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실뿐 아니라 성령을 주신 것은 너무도 큰 선물이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 것을 질그릇에 보배를 담은 것에 비유하셨다.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우리에게 있지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인생에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횡재가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 기뻐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성령님은 기쁨의 영이시다.
기쁨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 주셨다.
그러나 성령의 기쁨으로 살기 위해서는 성령충만 해야 한다.
엡 5:18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기쁨을 누리려면 성령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고 성령님이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기쁨을 주신다.
24 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는 예수님과의 교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바로 교제다.
우리는 예수님과 교제를 통해서 예수님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요일 1:3-4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요한은 우리의 사귐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했다.
그 누림이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기쁨은 예수님을 가까이 할수록 더 많이 누리게 된다.
예수님의 기쁨은 예수님과 사귈수록 더 많이 누릴수 있게 된다.
*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모든 슬픔을 이길수 있는 힘이 된다.
예수님이 주신 기쁨이 모든 근심을 이기게 해 주셨다.
제자들은 근심했으나 이후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은 후에는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들이 되었다.
더 나아가 근심과 환난 주에서도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도행전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2.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우리의 힘이 된다.
느헤미야 8:10 “...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수 있는가?
*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된다.
여호와를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된다.
여호와를 가까이 함이 우리의 복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힘을 얻게 된다.
* 여호와를 경외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된다.
시 147: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도다”
하나님을 존경할수록 높일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힘을 얻게 된다.
*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게 된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은 우리의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된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정이 우리 자신의 감정을 결정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귀중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게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게 된다.
다른 사람을 미소 짓게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도 살아갈 용기를 주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모든 근심을 이길수 있는 힘을 주신다.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가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도 이길 힘을 얻는다.
두려움을 이길 힘을 주시고 경제적 어려움도 이길 힘을 주시고 살 용기와 희망도 주신다.
일 할 맛이 나고 열정이 솟아나게 된다.
하나님이 웃으시는 것을 느낄 때 우리도 웃게 된다.
*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 때 우리 인생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가 갈라진다.
우리를 통해서 주변이 더 좋게 변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실패로 보이는 일도 성공으로 변한다.
나를 온전케 만든다.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여유 있게 만들고 힘 있게 만든다.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아멘.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 때 우리는 힘을 얻는다.
슬픔을 이길 힘을 얻고 고난을 이길 힘을 얻는다.
그 어떤 근심거리가 있어도 기뻐할 힘을 얻는다.
병을 이길수 있는 힘도 얻는다.
그 기쁨이 힘이 되어 우리 인생을 비상하게 한다.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날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수 잇는 힘을 얻는다.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수 있는 힘을 얻는다.
우리가 가장 큰 힘을 얻을 때가 무엇을 가졌을 때가 아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졌을 때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 때이다.
기뻐하는 것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