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시편 131:1-3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 시편 131:1-3)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이는 다윗의 고백이다.
본 시편은 다윗의 시로서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갈 때 부른 노래 중 하나다.
다윗 자신이 체험학교를 통하여 터득한 진리가 이 시에 너무도 깊고 무게있게 응축되어 있다.
고요하고 평온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고요하고 평온한 사람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이렇게 좋은 고요와 평온을 누가 누릴수 있는가?
고요와 평온은 성품이 좋다고 누리는 것이 아니다.
조용한 성품의 사람은 오히려 소침해 지기 쉽고, 작은 일에도 상처 받기가 쉽다.
활발한 성품의 사람은 표현도 잘 하고 웃기도 잘 하지만, 인간관계가 나빠지거나 어려워지면 소리가 크게 나서 다른 사람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고요와 평온은 환경이 좋다고 누리는 것도 아니다.
문제가 없다고 마음의 고요와 평온을 누릴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홀로 지낸다고 해도 마음의 고요와 평온은 오지 않는다.
사람이 실패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기도 하지만 성공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기도 한다.
풍랑 이는 바다에서는 불안하다.
그러나 풍랑이는 바다에서도 불안하지 않으려면 파도 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풍랑 이는 바다 같은 이 세상에서 고요하고 평온하게 살려면 믿음으로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윗은 실로 내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 바란다.
1. 겸손하면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겸손하면 고요하고 평온하다.
교만하면 고요하지 못하고 평온하지 못하다.
교만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서 눈으로 나타나고 그 다음은 하는 일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다고 했다.
눈도 오만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일도 감당치 못할 큰 일을 힘쓰지 않는다고 했다.
실로 겸손은 마음으로도 낮아지고 눈으로도 불손하지 아니하고 일로도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교만한 자는 그 마음도 그 인생도 늘 흔들리고 불안하다.
높은 산 꼭대기는 바람 잘 날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깊은 골짜기는 늘 고요하고 평온하다.
그래서 목자들은 가축들을 쉬게 하려고 골짜기로 내려가게 한다.
하나님도 우리를 쉬게 하려고 내려가게 하신다.
사 63:14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를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같이 인도하사 쉬게 하신다.
왜 하나님이 나를 낮추시는가? 왜 봉우리로 데려가지 않고 골짜기로 데려가는가? 우리는
항거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의 고요와 평온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골짜기로 내려가게 하신다.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같이 인도하사 우리를 쉬게 하신다.
다 같이 해 봅시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인도하사 편히 쉬게 하셨도다.”
바다물도 그 위는 늘 파도가 일어나지만 바다 밑 깊은 곳은 항상 고요하고 평온하다.
바닷물을 연구하는 분이 말하기를 동해 바다는 깊고 그 밑은 고요해서 거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바다 밑 심층의 물이 300년에 한번 정도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해지면 고요하고 평온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겸손해질수 없다.
돈이 없고 지식이 없다고 겸손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욕구와 반발심으로 거센 인격이 될 수도 있다.
겸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야 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면 돈이 많아도, 없어도, 지식이 있어도 없어도 겸손해진다.
우리도 진정 하나님을 만나면 겸손해지고 고요하고 평온해 진다.
* 욕심을 버려야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믿어야 욕심을 버릴수 있다.
대개 우리의 꿈은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의 분수에 맞지 않는 과욕을 가진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사명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큰 꿈이라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기 때문에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만드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는 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에 맞게 만드셨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는 목적에 맞게 그릇을 만든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토기장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그릇 따라 꿈을 주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그 사람의 마음에 크기에 따라서, 그에게 주신 믿음의 크기에 따라서, 그리고 그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서 꿈을 주신다.
믿는 자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까지 초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힘 주시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
욕심을 버리면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게 된다.
욕심을 버리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예수 안에 사는 기쁨과 평안과 부요를 누린다.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고요와 평온 해 진다.
2. 하나님 품 안에 사는 것으로 만족할 때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2절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
하나님 품 안에 안겨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고요하고 평온한 사람이 된다.
젖먹이는 젖 때문에 엄마의 품을 찾는다.
그러나 젖 뗀 아이는 더 이상 젖 때문에 어미 품을 찾지 않는다.
그냥 어미 품에 안겨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지금 젖뗀 아이가 어미 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기 바란다.
더 이상 하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하나님 자신을 좋아하며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시기 바란다.
얼마나 고요하고 평온한가?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젖먹이가 젖을 떼는 것과 같은 성장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젖먹이가 젖을 떼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젖먹이에게는 엄마의 젖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젖먹이에게 젖을 떼게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젖을 떼야 한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성장을 위해서 젖 떼는 고통을 겪게 하신다.
우리에게도 젖먹이 같이 너무도 원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날마다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을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때 우리는 아파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 대신 하나님 자신을 더욱 신뢰하게 하시고 좋아하도록 만드신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 만으로 만족하게 만드신다.
하나님 자신만을 좋아하고 하나님 자신이 좋아서 하나님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성장의 고통은 값있는 고통이다.
성장의 고통은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겪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버리지 못하던 집착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게 하신다.
그래서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하게 된다.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이 나보다 더 잘 되고 더 크게 쓰임 받아도 고요하고 평온하다.
옆의 가게 매상이 우리 가게보다 더 올라가도 고요하고 평온하다.
내 자녀가 다른 집 자녀들보다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도 고요하고 평온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뿐 아니라 최선의 은혜을 주신줄 믿기에 고요하고 평온하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그곳이 평화의 장소다.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 놓아야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린 아이가 젖을 바라고 어미 품을 찾을 때는 고요함과 평온이 없다.
그러나 젖 뗀 아이가 어미 품이 좋고 편안해서 안길 때는 마음에 고요함과 평온함을 얻는다.
그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 위해서 찾을 때는 늘 불안하고 조급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좋아서 그 품에 자신을 맡기는 자가 되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어떤 것은 맡길 수 있지만 내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께 자신을 맡겼는가를 알려면 내가 얼마나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가?
그 마음의 고요와 평온함이 얼마나 유지되는 가를 보면 알게 된다.
맡기는 것만큼 평정심이 유지된다.
예수님은 작은 조각배를 타고 풍랑이는 바다에서도 평온하게 주무셨다.
그 때 베드로는 풍랑 이는 바다에서 죽게 되었다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다.
그러나 그 베드로가 성령받고 믿음이 자란 후에는 감옥에 들어가서 죽음을 앞에 두고도 평온히 잠들 수 있었다.
우리도 믿음이 자라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면 풍파 많은 세상에서도 고요하고 평온하게 살게 된다.
3. 하나님을 바라보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3절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고요와 평온을 온 백성들이 다 함께 누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라고 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계속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때만 바라보지 말고 항상 바라보아야 한다. 계속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자신을 보거나 문제를 보면 곧 고요와 평온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결같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마음이 밝아지고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긴다.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노래했던것처럼 계속해서 자신을 맡기며 살아야 한다.
다윗은 평생 여호와를 바라보며 살기를 소원했다.
시27:4]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존 뉴톤은 노예장사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만은 그 길을 걷지 않게 하려고 공부를 시키려고 무던히 애 썼지만 아들은 공부하지 않았고 결국 그도 노예장사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서 노예로 팔았다.
어느 날도 노예를 배에 싣고 영국으로 향하던 중 큰 풍랑을 만나 위기에 처했다.
그는 어쩔수 없이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그날 그는 구원을 얻었다.
그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충성스러운 집사가 되었다. 훗날 그는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어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목회하다가 은퇴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목사님의 목회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을때마다
그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한 가지 기억 밖에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다는 것과
그런 죄인을 구원해 주신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뿐입니다.“
그가 지은 amazing grace 는 이해 할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고백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에 한번 녹아지면 내가 행한 그 어떤 일도, 내가 이룬 그 어떤 업적도 생각지 않고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일평생 여호와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가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우리 모두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보며 삽시다.
그러면 풍파 많은 이 세상에서도 고요하고 평온하게 살게 된다.
오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셨으면 제가 선포할 때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란다.
나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나는 젖뗀 아이 같이 하나님 품 안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나는 고요하고 평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