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고린도후서 6:1-10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 6:1-10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자.
지난 주일은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된다는 말씀을 전했다.
오늘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은혜는 중단되지 않지만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야 은혜가 은혜되고
은혜가 더 풍성해진다.
고린도 교회는 은혜를 많이 받은 교회였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떠난 후에 비 복음적인 목회자들이 와서 바른 복음에서 떠나고 있었다.
또한 고린도 교회는 은혜를 많이 받았으면서도 은혜 받은 교회답게 살지 않고
다툼과 시비와 심지어는 우상숭배와 음행의 문제까지 있었다.
바울사도는 그들을 향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다.
1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는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꾸짖거나 명령하지 않고 권한다고 한 말에는 그의 애정과 간절함이 들어있다.
한편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권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곧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권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권위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권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반드시 들어야 하고 반드시 경청해야 하고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말씀이다.
여기 “헛되이” 라는 말은 “의미없게 하다” “쓸모없게 힌다” “무시한다”의 뜻이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은혜 주신 목적이 상실된다.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은혜를 거역하는 것이 된다.
고린도 교회에 하신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어찌 보면 우리 교회도 고린도 교회에 못지않게 은혜 받은 교회다.
우리 성도들이 고린도교회 성도들 못지않게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의 은혜와 영적인 신령한 은혜를 얼마나 많이 주셨는가?
오늘 우리들에게 “너희는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 말씀하신다.
이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나누려고 한다.
은혜를 은혜로 받아라.
2절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 하나님이 도와 주신 은혜를 알아야 한다.
은혜 베풀 때에 내가 너를 들었다고 하셨다.
들었다는 말씀은 응답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들으시고 도와주신 은혜를 알아야 한다.
금년 한 해도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았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았겠는가?
개인적으로도 이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살아온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건강을 지켜 주시고, 하나님이 삶을 도와 주시고, 우리의 가정을 도와주셨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생활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도와 주신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금년 한 해도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도와 주신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도 신앙생활이 어려운 때였지만 계속 말씀으로 우리들을 먹여주셨다.
교회도 재정적으로 어려운 때였지만 계속 도와 주셔서 교회로서의 사명을 할수 있게 해 주셨다.
나 자신이 목회생활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지만 하나님이 감당할 힘을 주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하나님이 도와주신 은혜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첫 단계이다.
*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은혜를 알아야 한다.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 하셨다.
구원의 날이라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날에 하나님이 도와주신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의 날에 하나님이 예수 믿도록 도와 주셔서 구원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이 은혜보다 더 큰 은혜는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했으면 무슨 소용인가?
구원해 주신 은혜를 알아야 한다.
* 지금이 은혜의 때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아야 하고 구원의 날에 구원 받아야 한다.
은혜의 때, 구원의 날이 언제인가?
바로 지금이다. 바로 오늘이다.
지금이 은혜 받을 때요 오늘이 구원의 날이다.
보라! 하셨다. 거듭 거듭 보라! 보라! 하셨다.
주의 깊게 보라! 는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은혜의 때다.
지금 이야말로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 받을 때다.
언제 은혜의 때가 끝날지 모른다.
은혜의 기회를 놓지지 말라는 말씀이다.
은혜의 때가 지나가면 기회가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이 예수 믿을 때다.
지금이 기도할 때다.
지금이 은혜 받아야 할 때다.
지금이 말씀대로 살 때다.
결코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언제나 지금처럼 은혜의 말씀이 항상 선포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 지나면 우리가 은혜를 사모해도 기회가 없다.
언제나 오늘처럼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ㄱ넛이 아니다.
오늘이 지나면 우리가 구원을 사모해도 때가 늦을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을, “오늘”을 놓지지 말기 바란다.
지금 은혜 받읍시다.
지금 순종을 결단합시다.
지금 구원의 은혜를 누립시다.
2. 은헤 받은 자 답게 살아라.
3절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은혜 받은 자는 은혜 받은 자 답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비방을 받지 않고 거리끼지 않게 된다.
* 받은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큰 선물을 받은자가 할 일은 먼저 중심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우리가 감사하는 것이 은혜 받은 자답게 사는 것이다.
감사하는 것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이다.
감사가 충만하면 은혜 주신 분을 기쁘시게 한다.
감사가 충만하면 은혜가 더하여 넘치게 된다.
* 은혜 받은 자는 고난을 잘 감당해야 한다.
4-5절 “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바울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받은 일군으로서 고난을 어떻게 감당했는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군이었으나 환난과 궁핍과 고난을 당했다.
매도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를 거슬러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수고를 많이 했고 밤잠도 자지 못하고 먹을 것도 먹지 못할때가 많았다.
그가 당한 고난을 고후 11장에서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매를 맞되 40 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
40에 하나 감한 매는 39 대 때리는 것이다.
40 대를 때리면 죽기 쉽기 때문에 율법으로서 39대까지 한정하셨다.
39 대를 맞으면 등의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런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 한다.
그래도 참고 인내했다.
매 맞음뿐 아니라 모든 환난을 겪으면서도 인내했다.
바울사도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 환난과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인내했다.
우리는 어떤가?
매는커녕 말 한마디 섭섭한 것도 참지 못하는 우리가 아닌가?
나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 자신을 많이 돌아보았다.
주의 일군으로 출발할 때는
주를 위해 고난 당하겠는가? 라는 물음 앞에서 “예, 주를 위해 죽기로 결단합니다” 눈물로 대답하며
오히려 주를 위해 고난 당하는 것에 감격했었지만
지금은 너무 안일에 빠진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은 어떤가?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죽음과 희생의 종교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도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희생이 없으면 은혜를 값싸게 만들게 된다.
우리뿐 아니라 다음 세대는 더욱 그럴 것 같아서 때로는 가슴이 무겁다.
다음 세대는 헌신이나 희생이나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과연 헌신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고 고난 없이 주의 뜻을 따를 수 있겠는가?
주를 위해 교회를 위해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고난도 달게 받으려 하는 젊은이들이
일어나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겠다.
은혜 받은 우리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하겠다.
우리부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도록 충성하는 본을 보여야 한다.
* 은혜 받은 자는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6절-7절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은혜 받은자는 어려워도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추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영적 생활도 깨끗해야 하고 육신생활도 깨끗해야 하고 물질생활도 깨끗해야 한다.
세속적인 것에 물들지 말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지식을 따라 신앙생활 해야 한다.
은혜 받은 자는 오래 참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참을수 없는 것도 참아야 한다.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은혜 받은 자는 관대해야 한다.
은혜 받은 자는 성령의 감동에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의 감화와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깨끗하게 살수도 없고 참을수도 없고 관대할수도 없다.
성령의 도움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3. 은혜 받은 자답게 살면 은혜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든다.
8절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은혜 받은 자 답게 살면 은혜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든다.
8-10절 까지 말씀은 상당히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다.
“영광과 욕됨”,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 “속이는자와 참된자 ”
두 가지 모순된 일들이 다 은혜 받은 자답게 사는 자에게 해당된다는 말씀이다.
은혜 받은 자답게 살면 욕된 것 같은데 실은 영광스럽다.
반대파. 비방하는 자들은 욕을 하지만 그러나 진리 안에 형제들에게서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영광을 받게 된다.
9절-10절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인간적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무명한 자 같지만 하나님이 유명한 자가 되게 하신다.
죽은자 같고 징계 받는 자 같지만 실상은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신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며 살게 하신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살게 하시고
오히려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해 주는 자가 되게 하신다.
이것이 바울사도의 삶이었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요
이것이 우리 교회 이야기다.
돌이켜 보면 항상 부족한데도 항상 모자람 없게 해 주시지 않았는가?
은혜 받은 자 답게 살면 이런 모순과도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
은혜 받은 자답게 살면 이런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은 우리의 상식적인 법칙과 다르다.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은 우리의 계산과 다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 인간적인 계산과 법칙을 뛰어넘은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은혜 받은 자답게 살아야 될 사람들이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