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21년 8월 8일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마가복음 5:1-20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마가복음 5:1-20
예수님 다 망가진 인생도 회복시켜 주신다. 마가복음 5:1-20
예수님은 다 망가진 인생도 회복시켜 주신다.
지난 주일은 예수님은 사랑이 율법의 전부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했다.
오늘은 예수님이 사랑으로 한 망가진 인생을 회복시켜 주신 말씀을 전하려 한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병자를 고치시고 또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을 전하시고 피곤하셨지만
저녁때가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바다 저 편으로 건너가자 하셨다.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셔서 배의 고물을 베게 삼고 주무셨는데 갑자기 큰 풍랑을 만나서 제자들은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다.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를 명하여 잔잔케 하셨고 배는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이르렀다.
예수님은 그렇게 피곤하신대도 왜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을가?
왜 해가 저문 밤에 그 풍랑을 뚫고 저편으로 가셨을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시려고 이처럼 건너가셨는가?
예수님 다 망가진 인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2절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 그 망가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피곤하신대도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오셨다.
그가 얼마나 망가진 사람인가?
3-5 절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한번 그 사람의 몰골을 생각해 보라.
오래 동안 옷도 입지 않고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밤낮 괴성을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다.
사람이 이보다 더 망가질수는 없을 것이다.
귀신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한다.
아무도 이 사람을 상종하려고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쇠사들로도 쇠고랑으로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피해 다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망가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바다를 건너서 여기까지 오셨다.
예수님이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오셔서 하신 일은 이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시고 고쳐주신 것 뿐이다. 그리고는 바로 배를 타고 돌아가셨다.
예수님 오직 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이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오신 것이다.
* 예수님은 망가진 인생도 귀중히 여기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도 이처럼 귀중히 여기신다.
우리의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은 우리의 사랑 때문이 아니고 주님 자신의 사랑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은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고 주님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다.
* 예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오신다.
예수님이 찾아가신 사람들, 만나신 사람들은 놀랍게도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었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사람이었고 높고 존귀한 사람들이 아니라 낮고 천대받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의인이나 건강한 사람, 높은 사람을 싫어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은 예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오신다.
눅 5:31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
오늘도 예수님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인생, 예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인생을 찾으신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은 상처받은 인생, 실패하고 망가진 인생, 구제불능이라고 딱지 붙은 인생을 찾아오신다.
혹시 자신이 망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이 말씀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사람은 주님의 은혜와 상관이 없다.
그런 사람은 외적으로 철저하게 망가진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다 같이 합시다.
“다 망가진 인생을 찾으시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2. 예수님은 망가진 인생을 회복시키신다.
8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그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그를 망가뜨린 귀신을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 귀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다.
6-7절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자 멀리 무덤 사이로부터 그가 예수께 달려와 절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귀신이 예수님을 피해서 멀리 도망가야 할 것 같은데 제 발로 달려와
예수님 앞에 절하고 있다.
귀신이 예수님의 권위 앞에 저절로 무릎을 꿇수 밖에 없다.
귀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귀신의 입으로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 귀신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마귀도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인줄 알고 말했지만 그러나 마귀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예수님이 누군지 아는 것만으로 예수님과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뿐 아니라 나의 주와 구주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과 상관이 있다. 그래야 예수님과 관계가 맺어진다.
다 같이 합시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요 나의 주인이시다,”
* 귀신도 예수님의 권세 밑에 있다.
9절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귀신에게 이름을 묻자 순순히 자기 이름을 대었다.
나도 과거 귀신 들린 자를 다룰 때 먼저 그의 이름을 물으면 자기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면 귀신이 떠나가는 것을 많이 체험했다.
예수의 이름 앞에 귀신이 꼼짝하지 못하고 굴복했다.
지금 이 사람에게는 군대 귀신이 들렸다.
여기 군대 라는 말은 군단 이라는 뜻이다. 당시 한 군단은 6천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진다.
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귀신이 들어갔는지 참 끔찍하다.
군대 귀신이 들렸으므로 쇠고랑으로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 많은 군대 귀신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권세 앞에는 복종했다.
* 귀신들은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한도 내에서만 활동할수 있다.
12절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귀신에게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으므로 귀신은 그에게서 나와서
돼지에게라도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고 간구했다.
귀신들이 그 지방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귀신들도 활동하는 지방과 영역이 다 있다.
그래서 자기들에게 할당된 지방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돼지 떼에게 들어가는 것 까지라도 예수님의 허락 없이는 들어갈수가 없었다
귀신은 예수님의 허락을 받고서야 2천 마리 돼지 떼에게 들어가서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
그 사람에게서 나가야 된다면 동물이라도 해치고 죽이려 한 것이다
귀신이 하는 일은 사람도 짐승도 망가뜨리고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은 그 사람을 망가뜨리게는 했어도 죽이지는 못했다.
귀신은 우리 육신도 죽이고 영혼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귀신이 할수 있었다면 이 사람을 진작 물에 빠져 죽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허락 없이는 죽일수 없었다.
생명은 주님의 손에 있다.
시간적으로도 주님이 허락하시는 시간 내에서만 괴롭힐수 있었다.
주님이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시자 한 순간도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서 떠나야 했다.
우리 주님께 모든 주권과 통치가 있다.
우리의 운명이 마귀에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음을 감사하라
* 예수님 그를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셨다.
15절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시고 그를 온전케 해 주셨다.
옷도 벗고 살던 자가 옷을 입었다. 아마도 옷을 단정하게 입었을 것이다.
과거에 내가 귀신을 좇아낼 때도 귀신이 떠나면 먼저 옷 메무새부터 만지고 단정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품행까지 단정하게 만들어 주셨다.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인격까지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작정하신 사람을 작정한 시간에 찾아주시고 귀신에게서 놓임받게 하시고 자유케 하시고 온전히 회복시켜 주셨다.
오늘도 예수님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망가진 인생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해방시켜 주시고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신다.
성경은 강한자의 탈취물을 더 강한자가 탈취한다고 하셨다.
찬앙햐라. 예수님의 권세를! 찬양하라 예수님의 은혜를!
다 같이 합시다. “예수님 망가진 인생도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신다.”
오늘도 예수님 찾아오시고 만나주시면 망가진 인생이 회복된다.
예수님이 찾아주시고 만나주시면 죄인이 의인 된다.
예수님이 찾아주시고 만나주시면 병든자가 건강해진다.
예수님이 찾아주시고 만나주시면 천한자는 존귀해진다.
다 망가진 인생이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실패자가 성공자가 된다. 믿습니까?
* 예수님의 긍휼이 그를 회복시키셨다.
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지 않으시고 그를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
돌아가서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셨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 주신 것을 알리라 하셨다.
예수님이 회복시켜 주신 단 하나의 이유는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사람을 한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다.
오늘도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는 다 은혜를 받는다.
어떤 죄인도, 어떤 망가진 인생도 주님의 긍휼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은헤를 입고 회복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님을 원치 않는 사람에게서는 떠나가신다.
* 회복된 후에 주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다.
20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다 망가셨던 한 인생이 완전히 회복된 후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참으로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놀랍다.
3. 예수님은 원치 않는 사람들을 떠나신다.
5: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 예수님은 원치 않는 자를 떠나신다.
돼지를 먹이던 자들이 놀라서 성읍으로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 광경을 보고 또 귀신들렸던 자가 온전해 진 것을 보고 크게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고 떠나기를 간구했따.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배를 타고 떠나셨다.
저들은 예수님이 이 귀신 들린자를 고쳐주신 것보다 자기들이 손해 본 물질을 더 생각했다.
예수님은 청하지 않아도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 가셨지만 그러나 거부하는 사람에게서는 떠나셨다
예수님은 고향에서도 원치 않는 그들을 위해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지 않고 떠나셨다.
예수님은 오늘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는 찾아오시지만 원치 않는 자에게서는 떠나신다.
만약 지금 당신이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찾아가실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예수님을 원치 않는다면 예수님은 떠나신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은혜 받지 못하는 자는 항상 예수님보다 돈을 더 원한다.
그러나 은혜 받을 자는 항상 돈 보다 예수님을 더 원한다.
* 예수님은 원하는 자, 사모하는자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 하셨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주리고 목마른 자가 부요할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가 너무 배가 부르지 않습니까?
주리고 목마른자 되어서 야곱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합니까?
이제 여러분은 자신에게 이 말씀을 적용해 보라.
오늘 나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인가?
오늘 나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게 받아드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주님의 은혜보다 다른 것을 더 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주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인가?
오늘 당신이 가지는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태도가 당신 인생을 결정한다.
은혜는 받아드리는 자의 것이 된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으면 이제 선포할 때 아멘으로 화답하기 바란다.
“예수님, 나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예수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예수님, 나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님 나의 인격도 품행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다 망가진 인생도 회복시켜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