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누구나 다 두려움이 있다.
죄가 들어온 이후 모든 인간은 두려움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든 사람은 다 내면 깊은 곳에 두려움이 있다.
경제문제에 대한 두려움, 건강문제에 대한 두려움,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고독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을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두려움 중의 하나는 주님께까지 버림받은것 같을 때이다.
오늘의 세상은 마치 풍랑이는 바다처럼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사회적인 위험과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래서 안전 시스템을 더 많이 설치하고 있다.
사고와 생명에 대한 두려움도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그래서 보험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인간 관계에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그래서 사업도 risk 가 적은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런 모든 두려움은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불면증이 심해지고 공항장해도 생기고 정신질환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두려움은 두려움을 더 낳게 된다.
사람이 두려워하다 보면 일을 더 망치고 점점 더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움을 진정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큰 두려움을 해결해 주실수 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타고 먼저 건녀편 벳세다로 가게 하셨다.
예수님은 무리를 다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제자들이 탄 배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 한 복판에 이르렀고 밤은 깊어가는데 그 바다에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젖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밤 4 경에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예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찾아오셨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서 가셨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 소리질렀다.
사람이 두려움에 빠지면 이렇게 스승도 알아보지 못한다.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했다.
두려움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통찰력도 없어진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1.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을 다 보고 계신다.
48 절 “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櫓) 젓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멀리 육지에 게셨으나 제자들이 바다 복판에서 풍랑을 인하여 힘겹게 노젓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신다.
특별히 우리가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고 계신다.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만나서 힙겹게 노젓는 것을 보고 계신다.
제자들이 탄 배는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떠나 바다 복판에 있었다.
이제 육지로 돌아올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었다고 햇다. 낮에도 풍랑은 무섭지만 캄캄한 밤에 만난 풍랑은 더욱 두렵다.
캄캄한 밤에, 바다 복판에 있으니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얼마나 그들이 두려웠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바람이 거스리므로 ” 인생의 물결이 우리를 거스릴 때가 있다.
때로는 순풍에 돛단배 같이 우리가 승승장구 하지만 때로는 바람이 우리를 거스릴 때가 있다.
모든 환경이 우리를 거스릴 때가 있다.
경제가 우리를 거스리면 우리가 경제적 시련에 시달리게 된다.
건강이 우리를 거스리면 우리는 돈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시달리게 된다.
가정이, 가족이, 자녀문제가 우리를 거스릴 때가 있다.
그러나 마치 바다 한 복판에서 고난을 당한 제자들처럼 앞으로 나갈수도 없고 돌아설수도 없는 어려울 때가 있다.
시작한 사업을 접을수도 없고 계속할수도 없는 때가 있다.
깊이 개입한 문제에서 빠져 나올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수도 없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볼 수도 없다.
이러한 우리를 주님이 보고 계신다.
오늘 본문이 무엇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같이 해 볼가요?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우리가 힘겹게 삶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
두려워하며 홀로 괴롭게 노젓고 있을때 주님을 보고 계신다.
주님이 보고 계시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은 보고만 계시지 않는다.
2. 예수님은 시간에 맞추어 오신다.
48절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예수님은 보고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그것도 가장 합당한 시간에 찾아오신다. 결코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찾아오신다.
밤 사경은 새벽 4시 경이다. 이 때가 가장 합당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가장 큰 절망의 시간이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가장 합당한 시간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왜 안 오시는가? 왜 안 도와주시는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서 오신다. 예수님의 시간이 가장 합당한 시간이다.
예수님의 시간은 예수님이 주님이신 것을 나타내시는 시간이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이틀을 더 유하신 후에야 그 곳으로 가셨다. 그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장사 지낸 후였다.
마르다는 “주님이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원망스럽게 말했다.
예수님은 무덤 앞에서 돌문을 열라고 하셨지만 마르다는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어서 나흘째 되면 썩기 시작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다.
그들이 돌문을 열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부르셨다.
이에 나사로가 수족과 얼굴을 베로 동인채로 뚜벅 뚜벅 걸어나왔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째가 가장 합당한 시간이었다.
성경은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가장 합당한 시간에 오신다.
그 시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크게 나타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예수님이 주님이신 것을 가장 크게 나타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주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도록 하는 시간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가장 적절한 시간에 찾아오신다.
3. 예수님은 어떤 두려움의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
6: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매 바람이 그쳤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일어나는 풍랑도 잠잠케 된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풍랑이 일어도 배가 파선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움을 이기고 평안을 누릴수 있다.
우리의 두려움에 대한 예수님의 최고의 처방은 “함께 하심”이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된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이기게 하신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라. 문제를 믿음으로 이길수 있다.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주신 문제는 그 어떤 문제든지 다 감당할수 있는 것임을 믿어라.
감당하지 못할 즈음에는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이 닫힐 때 또 다른 문을 열어 주신다.
마침내 목적지까지 가게 하신다.
제자들에게 앞서 건너 벳세다에 가라고 하신이가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건너편에 가게 하신다. 결코 예수님이 가라고 하신 길을 풍랑이 가로막지 못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이 목적한 곳으로 가게 하신다.
그 어떤 문제를 만나도 예수님이 목적하신 곳으로 가게 하실 것을 믿어라.
혹시 여러분 중에 인생의 풍랑을 만난 분이 있는가?
가정이 흔들립니까? 사업이 흔들립니까? 염려와 두려움이 몰려 옵니까?
그래도 주님이 목적하신 대로 가게 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만나는 풍랑은 우리의 믿음을 일깨워준다.
52절 :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니라“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을때 두려워했던 것은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두려움에 마음이 혼미해져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므로 풍랑을 잔잔케 해 주실 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했다.
우리도 때때로 고난을 통해서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 잃었던 믿음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해 주신다.
우리도 그렇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고비마다 주님의 주님 되심을 체험 했엇다.
그럼에도 또 우리 마음이 둔해진다.
그럴때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운 풍랑을 일으키시고 힘들게 인생을 노젓게 하신다.
그러나 주님의 목적은 우리에게 풍랑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둔해진 마음의 눈을 여시고 갈앉은 마음에 불을 붙이시는 것이다.
주님이 계획대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주님이 지으셨고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사셨다.
누구나 자기의 것은 사랑한다. 누구나 자기의 것은 보호한다. 누구나 자기의 것은 돌본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받는 존재다. 우리는 주님의 보호 받는 존재다. 우리는 주님이 귀중히 여기는 존재다.
주님을 신뢰하고 마치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이 마음을 평온하고 고요하게 하라.
이제 묻는 말에 믿음으로 아멘 하시기 바란다.
여러분이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믿는가?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심을 믿습니까?
주님이 가장 합당한 시간에 우리를 찾아오실 것을 믿습니까?
주님의 우리의 풍랑을 잔잔케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우리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더욱 알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주님이 목적지까지 가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