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21년 7월 18일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요한복음 4:28-30, 39-42
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요한복음 4:28-30, 39-42
예수님 만나면 행복해진다. 요한복음 4:28-30, 39-42
예수님 만나면 행복해진다.
지난 주일은 하나님께 큰 일을 기대하라고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은 외적으로 나타는 큰 일, 예를 들면 홍해를 가르시는 큰 일, 사막에 강을 내시는 큰 일을 행하실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도 홍해를 가르는 것 같은 큰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이 우리 내면에서 큰 일을 행하시면 수치스러운 사람이 영광스러워지고 죄인이 의인이 되고 불
행한 사람이 행복해진다.
오늘은 불행했던 사람들이 예수님 만나서 행복해진 말씀을 전하려 한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사마리아는 과거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으나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패망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인종적으로 혼혈이 되었고 신앙적으로도 이방종교와 혼합이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취급 하면서 그들과 상종 하지 않았다.
그들과 말도 하지 않았고 같이 음식을 먹는 일은 더욱 하지 않았다.
남쪽에서 북쪽 갈리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행하면 지름길인데 그 땅도 밟지 않기 위해서 피해 다였다. 이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은 경멸 받던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수가성 여자는 더욱 불행한 여자였다.
수가성은 사마리아의 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 여자는 도덕적으로도 방종한 여자였다.
정식 결혼도 하지 않고 다섯 남자와 차례로 동거해 오다가 이제는 6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다.
그러니 얼마나 삶이 힘들었겠는가? 상처는 얼마나 많이 받았겠는가?
또 사람들의 비난은 얼마나 받았을가?
그는 수가성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던 것 같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낮은 햇빛이 강하게 내려 쬐어서 아주 덥기 때문에 여자들이 대개 시원한 아침 저녁으로 물 길러 오는데 그는 그 뜨거운 정오에 물 길러 온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불행한 여자도 예수님 만나서 행복해졌고
이런 불행한 수가성 사람들도 예수님 만나서 행복해졌다.
1. 예수님이 불행한 사람을 찾아주신다.
3-5절 “유대를 떠나서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유대인들이 피해 다니는 사마리아를 예수님은 일부러 통행하셨다.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이는 예수님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그곳을 통과하셔야 했다는 말씀이다.
그 목적이 무엇인가? 그 곳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만나시기 위해서였다.
외롭고 불행한 수가성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버림받은 수가성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오늘도 예수님은 불행한 사람을 찾아오신다. 예수님은 버림 받은 사람을 찾아오신다.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을 찾아오신다.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오신다.
예수님은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생이 공허한 사람들을 찾아오신다.
* 예수님은 적절한 장소로 찾아오신다.
6절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행로에 곤하여 –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행로에 피곤하실 정도로 불행한 인간을 찾아오셨다니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지..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피곤하셔서 쉬기 위해서 우물가에 앉으신 것만은 아니다.
만나야 할 수가성 여자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신다.
사람들의 멸시와 눈총을 받는 그 불행한 여자를 만나시기 위해 우물가에서 기다리셨다
예수님은 불행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장소로 찾아오신다.
예수님은 수가성에 들어가셔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다.
그 우물은 야곱의 실패의 장소였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하셨으나 그는 그 땅에 살기 위해서 팠던 우물이다.
예수님은 야곱의 실패의 장소, 그 우물가에서 그 여자를 기다리셨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첫 번째 만나주실 때도 그가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못하여 실망의 그물을 씻고 있던 그 아침에 그 실패의 해변으로 찾아가셔서 만나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나주실 때도 그가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못잡고 실망의 그물을 씻고 있던 그 아침에 그 실패의 해변을 찾아가서 그를 만나주셨다.
우리 인생의 실패한 장소에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와서 만나주신다.
그 곳이 우리를 만나시기 위한 가장 적절한 장소이다.
오늘도 예수님은 실패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만나기 위해 실패의 장소로 찾아주신다.
오늘도 예수님은 불행한 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피곤할 정도로 찾아가시고 만나주신다.
* 예수님은 적절한 시간에 찾아오신다.
6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제 6시는 낮 12시다. 유대 시간에 6 시간을 더하면 우리 시간이다.
예수님이 기다리시던 그 시간에 그 여자는 물동이를 가지고 우물가로 나왔다.
아마 그 여자는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싶지 않아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에 물을 길러 온 것 같다.
이 시간은 가장 적절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 여자를 치료하시고 구원하실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시간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간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실 타임 스케쥴을 가지고 계신다.
불행한 사람을 만나야 할 가장 적절한 시간을 알고 계시고 그 시간에 찾아주신다.
예수님은 가장 적절한 시기, 가장 적절한 장소, 가장 적절한 환경에서 우리를 만나 주신다.
어떤 불행한 사람도 예수님이 찾아주시고 만나 주시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
불행한가? 공허한가? 고독한가? 실패자인가?
지금 예수님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다.
다 같이 합시다. “불행한 사람을 기다리시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2.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신지 알려 주신다.
7절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 불행한 여자에게 점차적으로 자신을 알려주셨다.
* 대화를 시도하셨다.
먼저 물을 좀 달라고 하셧다. 물은 평범한 삶의 문제, 우물 가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였다.
예수님은 이렇게 평범하고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대화를 시작하셨다.
그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고 더군다나 당신은 유대인 남자요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나에게 말을 걸고 물을 달라고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 점차 영적인 문제로 대화를 이끌어 가셨다.
10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
예수님은 육신의 물로 대화를 시작해서 영적인 생수에 대한 말씀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셨다.
그러나 이 여자는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를 깊은 우물에서 긷는 아주 수질이 좋은 물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이 어디서 그런 생수를 얻을수 잇으며 그릇도 없이 어떻게 그 물을 퍼올리겠다는 것입니까? 하고 되물었다.
더 나아가 그는 당신이 우리에게 이 우물을 준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크냐고 물었다.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께 당신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큽니까? 하는 어리석을 질문을 햇다.
예수님께서 네게 물 좀 달라하는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하신 말씀처럼 그 여인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어리석을 질문을 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면 예수님보다 사람을 더 크게 볼수 있다.
예수님보다 세상 권세나 물질이 더 커 보일때가 있다.
우리의 눈을 열어서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 예수님께 생수를 구하게 하셨다.
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제 그 여자는 최소한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다시 물 길러 올 필요가 없는 줄을 깨닫고 예수님께 그 생수를 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은혜 받는 시작이다. 은혜를 구하는 것이 은혜 받는 첫 걸음이다.
확실하게 깨닫지 못해도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고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은혜를 구하라ㅗ 하신다.
* 예수님은 그의 은밀한 과거와 현실을 지적하셨다.
16-18절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예수님은 마치 그 여자의 가장 아픈 정곡을 찌르시듯이 너의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아마 그는 당황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얼떨결에 남편이 없다고 했다.
예수님은 그의 과거와 현재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이는 그 여자를 정죄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그 여자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로서 자신을 좀 더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다.
이 때 그 여자는 예수님이 선지자인줄 생각하게 되었다.
19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
그 여자는 예수님을 점차적으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유대인으로 생각했던 그가 이제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게 되었다.
* 예수님은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21절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은 예배의 핵심, 예배의 본질을 말씀하셨다.
그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 하는 것이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할뿐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예배하라고 하셨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라는 말씀이다.
더 신령과 진리로 예배 하라고 하셨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배는 인간적인 요소가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아직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시지 않는 예배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이때 여자의 눈이 점점 밝아지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라고 알려 주셨다.
25-26절 “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이 여자도 모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다.
이 때 예수님은 네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가 바로 나다.
네게 말하는 내가 바로 그로라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메시야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에 그 여자의 영적인 눈이 확 열려졌다.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 이신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자 그의 인생은 180도 확 달라졌다.
다 같이 합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3. 예수님 만나니 행복해졌다.
28절“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 여자는 예수를 메시야로 믿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물동이를 던져 버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뛰어갔다.
이는 그의 깊은 수치심과 사람에 대한 기피증도 다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여자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이 분이 메시야가 아니냐 와 보라” 고 외쳤다.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던 자기의 과거를 자기의 입으로 말할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완전히 과거에서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진짜 만나면 자유함을 누린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 * 예수를 만난 수가성 사람들도 행복해졌다.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그 여자의 차고 넘치는 기쁨이 온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수가성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왔다가 예수님을 자기 마을로 청하여서 이틀동안 머물게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들도 예수님이 구주신줄 알고 믿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라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인 것을 알기 때문이라” 고 했다.
더 이상 그들은 버림받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들이 되었다.
아무리 멸시 받는 사람도 예수님 만나면 존귀한 자가 된다.
추한 죄인도 예수님 만나면 의로워진다. 실패한 사람도 예수님 만나면 다시 일어선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예수님 만나면 행복해진다.
누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그 여인을 새롭게 해 줄수 있겠는가?
무슨 방법으로 그의 깊은 고독과 공허와 갈증을 채울수가 있겠는가?
누가 그의 깊은 수치심과 상처와 열등감을 치유해 줄수 있겠는가?
오직 예수님이 그를 저 깊은 불행의 수렁에서 끌어 올려주시고 전혀 새로운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다.
예수님 만나면 상처 받았던 현장으로 되돌아갈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수치스러운 현장으로 되돌아갈수 있는 현장으로 되돌아갈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오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셨으면 제가 선포할 때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란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님 믿는 나는 행복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