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 담임목사 서삼정
본문말씀 : 누가복음 18:31-34
예수님 우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눅 18:31-34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오늘부터 4순절 기간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놀라운 일들을 나누려고 한다.
사순절은 성경에 나오는 절기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미리 준비하고 맞이하기 위해서 부활절 이전의 40일 동안 성도들이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간으로 초대교회 때부터 지켜온 절기다.
특별히 오늘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는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것을 이미 눅 9:51에서 말씀하셨다.
눅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마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가까웠다.
이제 마지막 사명이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이다.
누가복음 9:51 이후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과정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신 일들이다.
* 예수님은 죽으러 가시면서도 할 일을 다 하셨다.
예수님은 심각한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두고 가시면서도 도중에 할 일을 다 하셨다.
뿐만 아니라 인류구원 이라는 큰 사명을 향해 가시면서도 도중에 만나주실 사람을 만나주셨고
치유해 주실 사람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실 사람을 구원하셨다.
우리가 어떤 큰 고난 앞에서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또 우리가 어떤 큰 사명을 할 때도 평소에 해야 할 기본적인 할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 예수님은 자원하셔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굳게 결심하셨다” 예수님께서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을 뜻한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환경에 의해서 할수 없이 하신 것이 아니라 자의로 행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이다.
요 10:18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또한 “굳게 결심하셨다”는 것은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많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아시고도 그 곳을 향해서 스스로 결심하고 올라가신 것을 뜻한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우리를 위해서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다 같이 해 봅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우리를 위해 기록된 모든 말씀을 이루려고 올라가셨다.
31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말씀은 구약에 기록된 예수님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가르친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셨고, 성경대로 사역하셨고, 성경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성경대로 다시 사셨다.
고전 15:3-4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창세 이전부터 계획하시고, 계획하신 바를 말씀해 주시고 , 그리고 그 말씀하신대로 이루셨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 전체의 핵심이며 성경전체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고난을 받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고 하셨다.
*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목마르다 하셨다.
요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피와 물을 다 쏟으셨기 때문에 목마르셨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에도 인내하신 예수님이 목마름 때문에 목마르다 하신 것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목마르다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가지신 이 자세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어떤이는 신령한 체험을 좀 하면 그것만 중요한 줄 알고 말씀을 가볍게 여긴다.
비록 천국을 실제로 다녀왓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더 우선이다.
우리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줄 믿고 말씀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대하듯이 대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이는 다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2. 우리를 위해 희롱과 능욕을 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32절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인자가 되셨다.
“인자” 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르칠 때 사용하신 말씀이다.
독생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인자로 오셨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인자가 되셨다.
히브리서 10: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고난을 받기 위해 몸을 입고 인자로 오셨다.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방인들에게 넘겨지셨다.
이방인들은 빌라도와 로마 군병들을 가르친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 있던 유대인들은 사람을 죽인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방인의 손을 빌어서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하고 상종도 하지 않던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이방인의 손에 넘기우는 것 자체가 큰 모욕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었다.
[시22:16]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시22:12]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방인에게 넘겨지셨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다 예수님을 능욕하고 조롱하는 일에 동참한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끌어안으시고 능욕을 당하시고 멸시를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방인에게 넘겨지셨다.
* 우리를 위해 희롱과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온갖 모욕과 멸시를 당하셨다.
제사장에게 심문 받을 때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눈을 가리고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때린 자가 누구이냐?” 하며 놀려댔다.
빌라도의 뜰에서는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모욕하고 멸시했다.
유대인의 왕 이라고 조롱하기 위해서 당시 왕족들이 입던 자색옷을 예수님에게 입히고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왕관처럼 씌우고 왕의 홀처럼 갈대를 그의 손에 쥐게 하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놀리며 그 갈대를 빼서 손에 피가 흐르게 하고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조롱했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멸시와 조롱을 당하셨다.
이사야 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시편에서도 다윗을 통하여 조롱과 멸시를 받으실 것을 예언하셨다.
시편 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 우리를 위해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다.
죄는 사망을 가져올 뿐 아니라 수치와 멸시와 조롱을 가져온다.
아담은 범죄하자 말자 그의 눈이 밝아져서 보게 된 것은 자신의 수치스러움 이었다.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들이 자기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자기들 부부 밖에 없건만 얼마나 수치스러웠던지 그들은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수치를 가리우려고 했던 것이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멸시를 받으셨다.
이사야 53:3-4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능욕과 멸시를 당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다 같이 해 봅시다. ‘우리를 위해 능욕과 멸시를 당하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3.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33절 “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 예수님 우리를 위해 채찍 맞으시려고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에 채찍질 까지 받으셨다.
채찍질은 그냥 한 대 두 대 때리는 것이 아니다.
가죽으로 만든 채찍에 끝에는 뾰죽한 것이 있어서 때릴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데
39 대를 때리는 것이 채찍형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채찍질 하고 십자가에 죽게 하라고 했다.
이 역시 구약에 예언된 말씀이 응하게 된 것이다.
이사야 53:5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병과 약함을 고쳐주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다.
이 사실이 이루어진 것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했다.
벧전 2:24 “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으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다 같이 해봅시다. “ 우리를 위해 채직 맞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 우리를 위해 죽으시려고 올라가셨다.
역시 십자가는 가장 큰 고통이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으셨다.
마가복음에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대속의 죽음을 죽기 위해 올라가신다고 하셨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여기 대속물은 속전을 말한다.
빚을 지고 종으로 팔린 친척을 속량하기 위해 지불하는 속전이나 (레위기 25;47-53)
또한 빚 때문에 빼앗긴 토지를 도로 찾아주기 위해 친척이 지불해 주는 속전을 말한다.
또한 포로나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 대신 값을 지불하는 속전을 말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지불해 주신 값을 가르친다.
그 값은 예수님 자신의 생명이었다.
그 값은 예수님 자신의 보혈이었다.
예수님 자신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히 9;12
독생자의 피가 얼마나 값진 것일가?
하나님이 독생자의 피를 기쁘게 받으시고 단번에 모든 인류의 죄를 사 해 주셨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 (히 9:22)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속해 주시고 사해 주셨다. 엡 1:7
더 나아가서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함도 주셨다. (롬 5:9)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 받고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다 같이 해 봅시다. “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감추셨다.
34절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을 여러번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는 신앙고백을 듣고 말씀하셨다.
눅 9:2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후에도 예수님은 여러번 직접 간접으로 자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다.
지금은 때가 가까웠으므로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수난 당하실 장소가 예루살렘인 것을 밝히셨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감취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이해할수 없도록 감추신 것이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물론 그들의 메시야 선입관과 기대감이 수난 당하는 메시야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수도 있다.
* 예수님이 깨닫지 못하도록 감추어 두신 것도 은혜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 깨달았다면 제자들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그 고난의 깊이를 어떻게 감당할수 있었겠는가?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을 막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때 우리가 깨닫지 못하도록 감추시는 것이 있눈데 이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감추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죽음에 대해서 감추신다.
만약 우리가 미래를 다 알거나 우리의 죽음을 미리 안다면 오늘을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매일 매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 원하신다.
우리에게 감추시는 것도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영영 감추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들은 조금 깨달았고 오순절에 성령 받고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하나님은 합당한 때에 깨닫게 해 주신다.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거듭 거듭 말씀해 주셨다.
때가 되면 깨달을수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깨닫지 못해도 말씀을 읽고 듣고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때가 되어서 필요할 때 하나님은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해 주신다.
오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으면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란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선지자의 말씀을 다 이루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멸시와 능욕을 당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채찍을 맞으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우리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