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림의 주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우리들은 재림의 주님을 소망중에 기다리며, 빛의 주님을 사랑하여 대강절기를 보내고 있다. 성탄의 주인공을 기뻐하여 빛으로 장식하며, 또한 칸타타에서 “빛으로 오신 주 아기 예수”등 7번 빛을 강조하며 영광을 올려 드린다. 빛과 영광은 동의어로 사용하여 천국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3). 빛되신 주님께서 구원의 영광을 확인하며서, “빛을 믿고 빛의 아들이 되라”고 외치셨다(요 12:28, 36). 빛은 상징이며 동시에 실제이다.
모세는 계시를 백성에게 전달하기 위해 주님을 만났으며,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는 얼굴이 해같이 빛나서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빛되신 주님의 영광스런 광채가 그의 얼굴에서 반사된 것이다. 산상변화에서 영광의 빛이 예수의 얼굴에서 해같이 나타나며, 모세와 엘리야 보다는 예수의 음성을 들으라는 성부의 선포를 듣게 된다. 빛되신 주님만이 인류의 구원자이시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강력한 빛 주님을 만나 소경이 되었으나 마침내 이방인을 위한 빛의 전달자 바울로 변화되었다.
영광의 빛되신 주님은 진리의 주님이시요, 거룩의 주님이시다. 진리되신 주님께서 죄없는 피를 흘려 죄로 범벅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신 빛이다. 이 분이야말로 그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의롭지 못한 자를 그 흘리신 피로 의롭다고 하며 영생 빛을 보장하셨다. 그 피로 씻기어진 세마포 옷을 입고 영광스런 빛의 화려함을 신자들은 천국에서 온전히 누릴 것이다. 찬란한 빛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지극히 높아진 자이다. 높아진 자들이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낮아짐이다.
영광의 히브리어 “kabod”단어의 어근은 무게 혹은 무거움이다. 다이아몬드는 무거울 수록 더욱 비싸지듯이,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 여겨야 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할 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높여 주신 것이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좇아 구별된 삶(=거룩)을 살아가는 것이다. 구별의 고통을 겪다 보니 하늘 빛을 세상 어두움 속으로 비추게 된다. 우리는 영광의 빛을 반사하는 빛의 자녀이다!
- 박성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