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2월은 내 주변에서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때마다 사실로 확인되는 것이 인생에 끝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한 해에 1월 1일이 있으면 12월 31이 마침내 찾아오는 것처럼! 끝을 맞이한 분은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를 떠나 보내는 유족에겐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 혹은 “I’m sorry for your loss”라고 인사한다. 그러나 성경은 loss(상실)이 아니라 gain(유익)이기에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한다(빌 1:21,23). 주님과 같이 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3:2).
인생의 마지막 점, 아니 영원의 시작점이 기정 사실일진대 제대로 바라보며 살고 싶다. 비록 시간의 제약 속에서 살지만 시간 초월자를 만날 영광의 순간을 의식하며 살고 싶다. 영원히 계시는 주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나 땅에서 숨쉬는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속에서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억매이는 것들을 훌훌 털어 버리며, 미래의 불안들을 내어 맡기며, 현재의 복잡한 가지들을 쳐버리는 삶을 살고 싶다. 이것이 찬란한 영원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나그네의 삶이 아니겠는가!
과거에 억매여서 현재를 우울하게 보냄은 인생 파괴이기에 과거의 낯뜨거운 실수를 털어내야 한다. 어두움에 묶여버리면 “내가”가 주인이 된 우울증 환자로 전락한다.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그러나 빛을 사모하여 주님께 나아오면 “주님”이 주인된 승리자로 올라선다. “주는 영원히 계시고..주님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베드로는 크나큰 실패의 현장에서 위를 바라 보며 담대히 올라 갔으나, 가룟 유다는 자기만을 바라 보며 실패자의 길을 담대히 내려 갔다.
미래의 불안에 사로 잡히면 염려의 감옥에 갇히기에 짜증스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내어 맡겨야 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기도와 간구로 내어 맡기지 못하면 그것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가 된다. 십자가 앞에 내어 던지면 평안의 천국 구름이 광야길 나그네를 가리워주면서 비틀거리지 않고현재의 삶에서 앞을 향해 걷도록 힘을 준다. 해야 할 일들이 순서없이 기다리지만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정돈하며 일하기에, 일의 기쁨을 누리면서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성례야 말로 시간관리를 잘하게 도와주는 하나님 지혜요 선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