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산을 옮겨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 시장하시던 참에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가 하여 가까이 가 보였으나 잎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는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셨고 제자들은 그 말을 들었다.
그 다음 날 그곳을 지나다가 베드로가 그 나무가 뿌리채 마른 것을 보고
“선생님, 보소서. 선생님이 저주하셨던 나무가 말랐나이다” 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어라” 하시면서 너희도 하나님을 믿으면 이 정도의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을 옮길수도 있다고 하셨다.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보게 된다.
시장하셔서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얻을가 해서 가까이 가셨던 너무도 인간적인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나무를 향하여 저주하실 때, 나무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뿌리채 뽑힌 것을 통하여 에수님에게서 창조주의 신성을 보게 된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실뿐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비록 인성을 가진 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산을 명령하여 바다로 옮길수 있다고 교훈하셨다.
물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상태를 가르치기도 하신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나무처럼 그들이 믿음의 모양만 가지고 있고 믿음의 내용도 행위도 없는 유대인들이 받을 심판을 교훈하셨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유대인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교훈 하신 것이다.
믿음의 열매가 없으면 잎만 무성한 무화가 나무와 같이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믿으면 능치 못한 것이 없다. 믿으면 산을 옮길수 있다.
여기서 산은 어려운 문제를 가르친다.
유대 민족들은 어려운 난제를 해석하는 랍비를 가르쳐 산을 옮기는 자 라고 불렀다.
우리는 믿음으로 산 같은 문제를 옮길수 잇고 옮겨야 한다.
1. 하나님을 믿으라.
22 “ 하나님을 믿어라”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을 믿어라 고 하셨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환경이나 조건이나 자기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믿음 believe 와 긍정적인 생각 positive thinking 과는 다르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자기에게서 난 생각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생길 때 믿음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어라.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창조주 시요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다스리시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것을 버려두지 아니하신다.
만물도 하나님이 선대하시므로 유지되어 간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은 말할것도 없이 사랑하시며 돌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한다.
*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라.
하나님은 계획하신 대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무계획 하신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뜻하신 대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인도하심을 믿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줄 믿어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믿음으로 말하라.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믿음은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말로도 행동으로도 일치가 되어야 진짜 믿는 것이다.
믿음은 형식이 아니다.믿음은 실제적인 것이다.
믿음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산 같은 문제를 향하여 믿음으로 옮겨져라 고 명령할 때 산 같은 문제도 떠나가게 된다.
믿음으로 명령하라는 말은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나 감정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명령하는 것이다.
한 독일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을 읽고
아, 믿음으로 명령하면 산을 옮길수 있구나 하고 동 서 독을 갈라놓고 있는 베를린 장벽 앞에 가서 “ 이 장벽아 무너져라!” 고 명령햇다. 그런데 그 벽이 꿈쩍도 하지 않앗다.
주님의 말씀은 진실한데 왜 안 무너질가? 하면서 말씀을 또 읽었다. 그랫더니 “네가” 라고 하지 않고
“너희가” 라고 하신 것을 읽고 “옳지 혼자가 아니라 믿는 자들이 함께 해야 하는구나” 하고 몇몇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베를린 장벽 앞에 가서 또 명령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산이 당장 옮겨진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옮겨지리라 고 하셨으니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을거야 하면서 그들은 계속 기도하기로 했다.
결국 1989년 11월 9일 그 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하나로 통일 되었다.
* 믿음으로 행동하라.
출 14:1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하나님은 모세가 홍해 앞에서 부르짖기만 하고 있을 때 부르짖지만 말고 행동하라고 하셨다.
그 백성들을 바다를 향해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때 바다가 갈라졌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 가운데 난 마른 땅으로 홍해를 건너게 되었다.
오늘 우리도 믿음으로 명령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다.
예수님이 말씀 한 마디로 무화과 나무를 마르게 하신것 같이 믿음으로 명령할 때 산이 옮겨진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참 믿음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믿음으로 말하라.
하나님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셨다. (민수기 14:28)
* 의심하지 말라.
믿음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줄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100% 믿는 것이 믿음이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줄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서 11 장은 믿음을 설명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햇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은 바라는 것을 현재의 실제처럼 믿는 것이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이는 아직 보지 못했으나 본것처럼 믿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고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것처럼 믿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다.
우리는 천국을 보지 못했으나 본것처럼 믿는다.
이것이 천국이 있다는 증거다.
성령은 바라는 것을 현실처럼 믿게 해 준다.
성령은 보지 못한 것을 본것처럼 확신을 준다.
그러나 사탄은 의심을 준다.
우리의 생각도 의심을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믿음을 가져야 확신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게 된다.
의심하는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야고보서 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3. 이미 받은 줄 믿어라.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다.
받은줄로 믿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을 구하며 구체적이어야 한다.
막연하게 구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구하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된다.
조용기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다.
“ 전도사 시절 좁은 단칸 방에서 지날 때 선교사 집을 방문했더니 선교사 아들이 책상도 있고 의자도 있고 좋은 자전거도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기도 책상과 의자와 자전거를 달라고 구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안 주시지 하면서 낙심이 될 무렵 꿈 가운데 주님이 나타나셨다. 그는 왜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해 놓고 구해도 안 주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네가 막연하게 구했지 어떤 책상, 어떤 의자, 어떤 자전거를 원하는지 확실하게 청구를 해야 내가 줄것 아니냐? 하셨다. 그래서 그 선교사 아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 같은 책상, 의자, 자전거를 달라고 구했다.
사실 자기 방은 너무 좁아서 그런 책상을 놓으면 누울 곳도 없지만 책상 위에 누워 자더라고 그런 책상을 일단 구했다. 걸어서 심방하지 않고 자전거로 심방해야 하니까 그렇게 좋은 자전거도 구했다.
얼마 후 그 선교사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이사짐 싸는 것을 도와 주려고 갔다. 열심히 도왓더니 조전도사님, 수고했는데 뭘 하나 드리고 싶은데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그는 얼른 바로 저 책상, 저 의자, 저 자전거 를 원합니다. 그랬더니 저 자전거는 미국에서 특별히 보내온 새로운 것인데 하며 망설이기에 제가 하나님께 구햇더니 하나님이 그것을 제 것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했다. 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셧으면 드려야지요 했다. 마음 변하기 전에 그는 세 가지를 한꺼번에 힘들게 다 가져와서 집에 갖다 놓고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이사짐을 도와 주려고 갔더니 선교사가 웃으면서 “조전도사, 그만 오세요. 하나님이 또 다른 것도 조전도사 것이라고 하시면 곤란합니다” 했다고 한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그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알고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새 자동차를 주세요 기도하기 보다 무슨 자동차 무슨 형을 주세요 하면 그 자동차를 이미 가진 것으로 마음에 그리기가 더 쉽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후
그가 믿음이 식어지지 않도록 그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밤 하늘을 쳐다 보게 하셨다.
“아브람, 너 저 별들을 한 번 헤아려 보아라.”
“하나, 둘, 열, 백, 천 ... 도저히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 내가 네 후손을 저 별처럼 많게 해 주겠다. ”
아브람은 그 때부터 시시 때때로 별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늙도록 자식이 없어도 별을 쳐다보았다.
“내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거야.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주실 것야”
비젼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시고 구체적으로 받은것처럼 비젼을 가지기를 원하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이다.
아직 아들 하나도 얻지 못한 그를 먼저 이름부터 “열국의 아비” 라고 바꾸어 주셨다.
그 때부터 그는 자신을 열국의 아비라고 부르게 했고 그렇게 살았다.
예수쟁이는 김치국부터 마시고 본다는 말이 있다.
믿음으로 기도한 후에는 떡이 생길줄 믿고 김치국부터 마셔야 한다.
물질을 구한 후에 아직 돈이 들어오지 않아도 자신을 백만장자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이처럼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과 막힌 것이 없어야 응답 받는다.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이 말씀을 하셨다.
너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너희 허물도 사하여 주리라고 하셨다.
또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형제와 불화한 것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한 후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다.
이 모든 말씀은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과 막힌 것이 없어야 응답 받는 말씀이다.
용서와 화해가 기도응답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한 결론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믿는 자에게도 산 같은 문제가 온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이 무엇인가?
경제, 건강, 신분, 증오심, 상처, 깊은 원한... 그 어떤 산이라도 믿음으로 옮길수 있다.
하나님을 믿어라. 문제를 보지말고 하나님을 보라.
상황이 나빠져도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의심하지 말라.
하나님께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이런 믿음이 산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