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삽시다. 올 해는 지난 해 보다 더 새롭게 삽시다.
새 해가 되었다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새 해는 새롭게 살 수 있는 기회다.
그리스도인은 계속 새로워지고 성장 되어 가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 가야 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한 성장은 계속 되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곧 성화를 뜻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기까지 성화해야 한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한 계속 성화 되어 가야 한다.
새로워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예배 시간 10분 빨리 오는 것을 결단하고 시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성장은 쉬운 것이 아니고 성장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러나 성장하지 않으면 그 때부터 죽기 시작한다.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곧 죽음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성화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게속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던지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는 무한하다.
우리가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어도, 아무리 신령한 체험을 많이 했어도 더 새로워져야 한다.
아무리 말씀의 깊이와 경건의 깊이에 도달했다 할지라도 계속 새로워져 가야 한다.
우리가 이만하면 되었지 하고 안주 하려고 하면 그 때부터 영적으로 내리막 길에 들어선 것이다.
로마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 생갈할수 있다.
1장 11장 까지는 기독교 교리편, 곧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을 말하고 있다.
1-11 장에서 가르치는 복음의 핵심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12-16장 은 기독교 실천편, 곧 복음을 믿는 자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삶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는 것이다.
본문은 “그러므로” 라고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1. 예배가 새로워져야 한다.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몸을 산 제물로 드려라.
영적 예배를 위해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구약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와 제물을 상기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제사에는 제물이 있어야 한다. 제사의 핵심은 제물이었다.
그런데 양이나 소나 짐승으로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우리 몸을 제물로 드려라고 하신다.
무슨 뜻인가? 우리 몸을 각을 떠서 불을 태워 드릴수는 없지 않는가?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예수 께서 우리 대신 그 몸을 제물로 드리셨다.
이제 우리는 몸을 제물로 드리듯이 전 인격적인 예배, 전 존재를 바쳐서 예배 드려야 한다.
예배는 전 존재를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몸이 주님의 성전으로 와야 한다. 일단은 우리 몸을 주님께 보여야 한다.
특수한 상황에서 집에서 인터넷이나 텔레비 앞에서 예배 드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고 생각할수 있는가?
아마 그럴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단 이 몸을 가지고 주님의 제단에 나와야 한다.
여러분, 새 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공적 예배 시간에 주의 제단에 나오시기 바란다.
아파도 오고, 힘들어도 오고, 죄를 지었어도 오고, 시험 들어도 일단 교회에 오라.
부부싸움을 해도 오고, 성도들간에 갈등이 있어도 오세요.
잘 되고 성공할 때도 오고, 실패하고 넘어질 때도 와야 한다.
* 몸은 전 인격을 의미한다.
몸은 그가 가진 지식 재능 물질 전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은 전 인격적으로 드리라는 말씀이다.
모든 지식, 재능, 물질, 감정을 다 드리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이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려라.
나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나의 찬송과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려라.
내가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려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자세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가 되어야 한다.
예배를 끝난 후에도 오늘 목사님 설교가 좋았지,,, 성가대 찬양이 좋았지,, 하는 생각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이었지 하나님이 기뻐하신 찬양이었지 생각해야 한다.
오늘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렸구나.
오늘 내가 내 인생 전부를 산 제물로 드렸구나 생각하며 감사하며 교회당을 나서야 한다.
설교자도 설교후 성도들의 반응이 어떤가?를 생각보다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적인 삶이어야 함을 말한다.
교회에서 드리는 공적 예배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적인 삶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삶이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어야 한다.
먹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잠자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한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먹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 먹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 일하라.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한다.
일상생활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일할 때도 성령님 함께 일해 주세요 커피를 마실 때도 성령님 함께 드셔요
우리는 매사를 성령님과 함께 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해야 한다.
성령님의 기뻐하시는 대로 해야 한다.
이것을 먹는 것이 성령님 기뻐하시나요? 이 일을 하는 것이 성령님이 기뻐하시나요?
이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할 때 예배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된다.
어떤이는 우리의 삶이 예배여야 하지 교회에서 예배만 잘 드리면 무슨 소용인가? 하며 비판한다.
그러나 먼저 공적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절대로 삶의 예배에 성공할 수가 없다.
공적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때 더 나아가 삶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새 해에 먼저 우리의 예배가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공적예배가 새로워지고 우리의 삶의 예배도 새로워지기를 결단하자.
2.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하셨다.
*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마음은 쉽게 더러워진다. 마음이 더러워지면 영안이 어두워진다.
영적 감각이 무디어진다. 그래서 영적인 분별력이 흐려진다.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욕심, 정욕, 안목의 정욕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정결해져야 분별력이 생긴다.
*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 마음은 쉽게 이 세대를 본받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대로 마음이 따라가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관, 세상적 삶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자들이지 닮아가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을 말한다.
내 삶에서 내 생각에서 세상적 요소가 없는가? 수시로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점검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한다.
날마다 주님 앞에 물어봐야 한다. 오늘 내가 행한 것, 내가 말한 것, 생각한 것 중에 주님이 원하지 않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새롭게 해야 한다.
* 긍정적인 믿음으로 생각하라.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두려운 하나님을 생각하지 말고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라.
작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말고 크신 하나님을 생각하라.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지 말고 더 좋은 것을 생각하라.
어려운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생각하라.
부모를 생각할 때도 좋은 부모를 생각하라. 자녀를 생각할 때도 좋응ㄴ 자녀를 생각하라.
부부가 서로 생각할 때도 나쁜 점을 생각지 말고 좋은 점을 생각하라.
사람은 누구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처녀 세 사람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목사님이 그 자매들에게 자매님의 장래는 어떨 것 같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첫째 자매의 대답 “그럭 저럭 살겠지요 인생 뭐 별것 있나요” 했다.
둘째 자매는 “저는 괜찮게 살 것 같은데요” 했다.
세 번째 처녀는 “저는 아주 행복하게 살 것 같은데요” 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좀 외모가 못난 편이었다. 목사님은 ‘누가 저 호박 같은 아가씨를 데려가서 행복하게 해 줄가? “ 싶었다.
10년 후에 그 세 자매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만나 보니 그 때 본인들이 하던 말대로
하나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런데로 괜찮게 살고 있었고 호박같은 처녀는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인생은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다.
마음 가짐에 따라 교회생활이 즐겁기도 하고 교회생활이 무겁기도 하다.
마음가짐에 따라 쉼을 얻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다.
마음가짐에 따라 인간관계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그 마음에 달려 있다. 어떤 삶을 사는가가 그 마음에 달려 있다.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
3. 섬김이 새로워져야 한다.
3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는 각자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섬겨야 한다.
여기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기 보다 섬김을 위한 믿음이다.
믿음의 분량은 크기를 말하기 보다는 은사와 직분의 특색과 한계를 뜻한다.
*우리가 이 은사와 직분의 한계를 잘 지키며 섬기는 것이 지혜다.
그 이상의 생각을 하면 자신도 올무에 빠지고 다른 사람도 시험에 들게 한다.
이는 사람이 나빠서라기 보다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셨다.
* 또 자칫하면 믿음의 분량보다 더 작게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직분을 땅에 묻어든 한 달란드 받은 자처럼 되기 쉽다.
우리는 믿음의 분량의 한계를 넘어서도 안 되고 못 미쳐서도 안 된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교만하기 쉽고 못 미치면 나태하기 쉽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 하나님이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은 각기 자기 은사대로 일하라고 하신 것이다.
내가 가장 잘 할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다.
내가 가장 잘 할수 있는 것을 하도록 힘써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그 직분으로 섬기라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주신 직분에 합당하게 일해야 한다.
대개 은사에 따라 직분을 맡겨 주신다.
그러나 때로는 내 은사와 상관없는 직분을 맡겨 줄 대도 있다.
그런 때에도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분야에 은사가 있는 분을 교회가 찾아서 맡길때까지는 내게 맡겨진 직분에 충성을 다 해야 한다.
새 해는 더욱 새롭게 살아야 한다.
예배도 더욱 새롭게 드리자.
마음도 더욱 새롭게 하자.
섬김도 더욱 새롭게 하자.
새롭게 사는 것만큼 복된 새해가 될 것이다.
새롭게 삽시다. 아멘
* 생각을 지켜라.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이 많다.
재산도 지켜야 하고 명예도 지켜야 하고 자존심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것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고 하신다.
우리에게 부정적 생각이 들어올 때 그것을 내버려 두지 말고 지켜야 한다.
생각은 마치 씨와 같다.
우리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믿음을 나누어 주셨다.
이 믿음은 구원을 받은 원천적인 믿음이라기 보다는 삶을 위한 믿음, 섬김을 위한 믿음을 뜻한다.
믿음의 분량은 키를 재듯 측정하는 양적인 분량이라기 보다는 각각 주신 직분과 은사의 범위와 특징과 한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3. 교회를 새롭게 섬겨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철저하게 교회 중심이어야 한다.
교회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섬겨야 할가?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섬겨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 우리는 몸을 섬겨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육신의 몸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가?
우리 각 개인은 몸에 붙어 있는 지체다.
우리 각 개인은 이 몸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우리 전체는 몸이다. 몸으로 섬겨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귀중히 여기며 몸을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한다.
우리 전체가 몸이라는
교회를 믿는 자들의 공동체 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실 그 말은 교회의 본질적인 의미를 감하시키는 말씀이다.
신자들의 공동체 라고 할 때는 신자들이 교회의 주역인 듯 생각하기 쉽다.
교회는 머리 되시는 예수님이 주역이시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교회를 우리 몸이 비유했다.
고전 12 장에서도 에베소서 4 장에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머리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시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다.
* 우리 몸의 각 지체가 다 중요하다. 눈, 코, 입, 귀, 손, 발 다 중요하다.
또 보이지 않는 지체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간, 폐, 심장, 신장 .. 등 각종 장기는 더욱 중요하다.
교회에서도 보이는 지체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체도 중요하다.
* 모든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따라서 움직여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발이 아플 때 손이 발을 만져주거나 가려우면 긁어 준다.
그렇다고 손이 발의 지시를 따르는 것인가?
아니다. 발은 머리에 보고하고 손은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머리 되시는 주님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 모든 지체는 몸을 위해 있다.
모든 지체는 몸을 위해 잇고 몸은 머리를 위해 있는 것이다.
지체가 머리의 지시를 따르지만 지체는 몸을 위해 있다고 하셨다.
굉장히 중요한 진리다.
어떤 성도들은 몸은 생각지 않고 머리만 생각한다.
교회는 생각하지 않고 주님만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성경은 분명하게 각 지체는 몸을 위해 있다고 하셧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는 몸의 유익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교인은 교회를 위해야 하고,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해야 한다.
* 받은 은사대로 섬겨라.
몸에 붙어 있는 각 지체는 자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은사대로 해야 한다.
눈은 보는 역할, 귀는 듣는 역할, 을 해야 한다.
은사 받은 대로 섬기라는 말은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 자기 역할을 하되 은사대로 하라는 것이다.
은사는 두 가지로 생각할수 있다.
성령께서 주신 각기 은사가 있다.
기도의 은사, 봉사와 섬김의 은사, 지혜의 은사, 말씀의 은사, .. 여러 가지 은사가 있다.
또한 은사대로 하라고 하는 것은 자기 직분대로 하라는 말씀과 같다.
내가 맡은 직분이 섬기는 것이면 섬기는 일로, 내가 맡은 직분이 리더이면 리더로서,
때로는 그 직분이 내가 받은 달란트와 맞지 않을 수도 잇다.
그러나 교회가 필요해서 맡겨 준 것이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발이 못 움직이면 손이 대신 해야 하고,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해야 하는 것과 같다.
교회가 정해 놓은 규범에 따라 섬겨야 한다.
* 모든 것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
사랑이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 있어야 한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이는 성도들이 존경해야 할 이유는 상대방의 개인적 인격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존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조건을 떠나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하나 만으로도 존경해야 한다.
대접하기를 먼저 해야 한다.
* 열심히 주를 섬겨야 한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주를 섬겨라.
게으르다는 말은 근심이나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나태하게 구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주님을 섬기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처음 믿을 때의 감격, 처음 직분 받을 때의 초심을 가지고 주를 섬겨라.
여러분, 질문에 속으로 답해 보라. 처음 은혜 받았을 때의 열심, 처음 직분 받았을 때의 초심이 변하지 않고 열심히 주를 섬기고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 보기를 바란다.
연륜이 쌓일수록 더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자.
새 해에 우리의 예배가 새로워 지기를 축원한다.
새 해에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 지기를 축원한다.
새 해에 우리의 섬김이 새로워 지기를 축원한다.
새 해에 새롭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