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을 차지하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그 땅을 분배하여 각 지파별로 기업으로 주셨고 각 지파는 가정별로 주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기업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선물로 약속하신 땅이었다.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행한 일이 없을 때 선물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기로 작정하신 기업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전도서 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 또 그것을 누리는 것까지도 우리에게 정해준 몫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자녀들에게 주실 기업도 정해져 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그 기업을 우리가 차지하기 까지는 거쳐야 할 과정도 있고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도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과정도 다 거치게 하시고 이제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 그들을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지점까지 오게 하셨다.
2017 년도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우리도 마치 가나안 입구에 온 것과 같다.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요단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가라고 하시면서
중요한 명령 세 가지를 하셨다.
오늘은 그 명령 세 가지를 전해 드리려고 한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세 가지 명령은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하시는 줄로 믿고 받으시기 바란다.
믿음으로 요단을 건너가라.
1: 2절 “1: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
믿음으로 요단 강을 건너라고 하기면서 먼저 “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었고 마치 거대한 산맥과도 같았던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 모세가 죽었으니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모든 일이 다 끝장난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은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백성들과 더불어 요단을 건너라고 하셨다.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인공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모세가 죽었으니 모든 것을 중단하라거나 계획을 수정해야 겠다거나 하시지 않고 오히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너희는 전진하라“고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 라고 하셨다.
먼저 할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1년 가까이 장막을 치고 있던 요단강 이편, 모압 평지에서 이제는 일어나라고 하셨다.
모든 승리와 기적과 축복의 첫 단계는 일어서는 것이다.
마음으로 일어서고, 몸으로 일어서고 행동으로 일어서라,
실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가? 편안한 자리에 안주하고 있는가?
이제는 일어서라. 축복의 기업을 향해 일어서라.
“ 이 모든 백성들과 요단을 건너” 하셨다.
요단은 빠르게 흐르는 강이란 뜻이다.
그리 큰 강은 아니지만 홍수때에는 넓이가 1 마일 정도라고 한다.
당시는 곡식을 거두는 홍수 시기였다.
요단이 곡식을 거두는 때에는 물이 언덕에 넘쳤다고 했다. (3:15)
그런 강을 수백만명이나 되는 그 모든 백성들과 어떻게 건널가?
그러나 여호수아는 요단을 어떻게 건너느냐고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어떻게 요단을 건널 것인가?를 연구하고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믿고 순종했다.
그는 곧 자기 백성들의 지도자인 관원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고 떠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여호수아는 관원들에게, 관원들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고 모두 강을 건널 준비를 했다.
우리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기업이 있지만 그것을 취하려고 할 때 많은 경우 장해물이 먼저 앞을 가로막는다.
모처럼 힘을 얻어서 일어서 행동하려고 하는데 도저히 어떻게 할수 없는 요단강 같은 장해물이 있을 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염려하거나 계산하려고 하지 말고 순종하고 일어나라.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40 여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에는 하나님의 기적이 앞섰다.
먼저 홍해를 가르시고 그 백성들로 건너게 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40 여년간 믿음의 훈련을 받았고 믿음이 성장했다.
이제는 먼저 믿음을 요구하셨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3: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그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믿고 순종하여 그들의 발로 요단 물을 밟고 서니까 흘러오던 요단 강물이
끊어지고 쌓여졌다.
단순하게 요단강이 갈라졌다고 하지 않고 성경은 상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16절)
아래로 흘러가던 물은 사해로 흘러가게 하시고 위에서 흘러 내려오던 물은 그쳐서 일어나 높은 담처럼 쌓여져서 사르단 아담 성읍까지 넘치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렇게 지명까지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임을 뜻한다.
훗날 시편에서 이 사실을 이렇게 노래했다.
시편 114: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시편 114:5)
그리고 강바닥은 순식간에 말라서 마른 땅이 되었다,
유아와 많은 짐들과 가축까지 이동하기에 좋도록 하나님은 강바닥까지 순식간에 마르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상하게 자기 백성들을 배려하신다.
요단의 거센 물결이 멈춰서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 그 마른 땅을 건너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 께서는 오늘도 자신을 믿고 순종하면 나아가는 자녀들을 위해서 필요하면 자연질서를 초월하셔서라도 길을 열어주시고 땅을 마르게 해 주신다.
이제 우리도 믿음으로 일어나 요단을 건너자.
기적보다 믿음이 먼저다. 큰 일을 하는 것보다 믿음이 먼저다.
어떤 조건보다 믿음이 먼저다. 사람보다 믿음이 먼저다.
먼저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믿음을 통해 역사하신다.
믿음의 크기가 하나님의 일에 크기가 된다. 믿음의 크기가 우리 인생의 크기가 된다.
큰 믿음을 가져라. 큰 믿음으로 앞길을 가로막는 요단강을 건너라.
2. 성결케 되라.
5: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후에는 먼저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
할례는 그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증표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 자손 대대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할례를 행하지 못했다.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기업을 차지하기 전에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
인간적으로 보면 지금은 할례를 행할 때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으로 요단강을 건넜다는 이 뉴스는 모든 가나안 왕들을 두렵게 했다.
이제는 곧장 진격해서 그 땅을 정복하고 취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먼저 성결케 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모든 백성에게 할례를 받게 하셨다.
할례를 받고 나면 며칠동안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적군 앞에서 할례를 행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생각하면 자살 행위와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이나 적군 때문에 좌우되는 분이 아니다.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이 그대로 순종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엄청난 상급을 주셨다.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길갈은 굴러간다 는 뜻이다.
할례에 따르는 보상으로 애굽의 수치, “애굽의 노예” 였다는 딱지가 굴러가게 하셨다.
이제 하나님과의 언약의 백성으로 회복되었으니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애굽에서 나온지 40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노예의 그 딱지가 굴러 떨어지게 하셨다.
40년이 지났기 때문이 아니라 적의 눈 앞에서 생명의 위헙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백성된 성결의 행위,
순종의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과거의 수치가 굴러 떨어지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시간이 지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홍해와 같은 기적을 보았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 십자가 밑에서 자신의 수치가 이미 십자가에서 처리된 것을 진정으로 받아드릴 때 해결 된다. 수치를 해결해 주는 것은 십자가 뿐이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하실 때 먼저 과거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시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성결케 하신다.
마치 우리가 음식을 담기 전에 그릇부터 깨긋게 하는 것과 같다.
오늘 이 장소가 우리의 길갈이 되기 바란다.
우리가 성결케 되는 길갈이 되기 바란다.
순종하기 어려운 것을 순종하는 길갈이 되기 바란다.
오늘 이 시간이 우리의 지난 수치가 굴러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3. 싸워서 차지하라.
1:5-6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떤 것과 같이 내가 너화 함께 있으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은 선물이지만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받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취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이지 그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싸우기 전에 먼저 승리를 확신시켜 주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다.
그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라고 하셨다.
이 모든 말씀은 싸움의 승리를 전제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주시는 기업도 싸워서 차지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이라고 그냥 차지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은 우리의 수고를 통해서 차지하게 하신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를 정탐하러 갔었다가 하나님의 군대장관을 만났다.
하나님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순종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나타난 것은 그 싸움의 실제적인 지휘관은 하나님의 군대대장임을 알게해 주신 것이다.
그는 어떻게 그 성을 정복해야 될지 전략까지 다 알려주었다.
여호수아는 그가 알려준 전략대로 순종해서 여리고 성을 정복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전쟁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싸워서 이기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전략대로 순종만 하면 싸우실 분은 하나님이시고
승리도 하나님이 주신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싸워서 취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실뿐 아니라
우리에게 성취감을 주시기 위해서다.
사람은 겉으로 얻어지는 기업만 가지고 만족할수 없다.
내면의 성취감은 더욱 중요하다. 성취감은 우리의 자존감을 일으켜 준다.
참으로 하나님은 자상하신 우리 아버지시다.
우리에게 기업을 주실뿐 아니라 우리 내면의 만족과 행복까지 배려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시다.
이제 우리는 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일어나 요단을 건너자.
이제 우리는 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자신을 성결케 하자.
지난 한 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이 없는지, 새롭게 결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리고 믿음으로 싸워서 우리의 기업을 취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취하는 새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