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속에는 고난도 있다. 창 47:7-12 (10)
축복 속에는 고난도 있다.
대개 사람들은 고난은 축복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저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받은 축복 속에는 고난도 있을뿐 아니라 그 고난 속에는 숨겨진 은혜가 있다.
그 은혜는 고난을 통해서만 주실 수 있는 은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부르셨다.
그를 통하여 그의 후손과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셨다.
우리도 축복의 통로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것이 지난주일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오늘은 축복의 사람 야곱에게 많은 고난이 있었고 그 가운데 숨겨진 은혜가 있었음을 생가각하려 한다.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에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축복의 사람 야곱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바로왕 앞에서 내 나이 130 인데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한 말 가운데서 그의 인생의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알수 있다.
우리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다 나름대로 고난과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야곱은 수없는 고난을 겪었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서도 축복하셨고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드셨다.
그 고난은 하나님이 그를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행하신 처방책이었다.
이제 축복의 사람 야곱의 겪은 고난 속에 숨어져 있었던 은혜를 전하고자 한다.
축복은 은혜의 선물이다.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야곱이 복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자기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그들이 태중에서도 서로 싸우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물어봤다.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다. 그런데 복중에서부터 그들은 두 민족으로 나누어지리라. 이 민족이 저 민족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다.
큰 자는 장자로 태어난 에서를 뜻하고 어린자는 차자로 태어난 야곱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미 뱃속에서부터 에서가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며 야곱의 후손이 에서의 후손보다 강한
족속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놀랍게도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사랑을 받았다.
신약성경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롬 9:11-13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으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야곱이 축복 받은 것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축복은 은혜의 선물이지 대가가 아니다.
야곱은 성품의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뱃속에서부터 싸움꾼이었고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하는 사람이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야곱보다 에서가 더 성품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셨다.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것이지 대가가 아니다.
성품이 좋고 인격이 좋은 사람에게만 복을 주신다면 하나님의 은혜보다 인간의 공로를 앞세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축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은혜의 선물로 복을 주신다.
오늘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복받은 사람이 된 것도 오직 은혜로 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모든 것을 얻는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기 바란다.
2. 야곱의 고난 속에 숨겨진 축복
창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야곱이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 안수기도를 받았다.
그러나 그 때부터 그의 험악한 세월이 시작되엇다.
* 도망자가 된 가운데서도 숨은 축복이 있었다.
축복을 빼앗긴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는 정든 고향과 부모를 떠나서 도망길에 올라.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야곱은 외삼촌을 만나본적도 없고 가 본적도 없다. 요즈음처럼 연락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길을 떠나는 야곱이 참으로 처량하고 서글픈 생각이 든다.
길을 가다가 해가 졌으므로 들판에서 돌을 베개 삼고 누워 있는 야곱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 축복받은 야곱인가?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밤에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꿈에 땅에서부터 하늘에 닿는 사다리가 있었고 그 사다리 위를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또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 내가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 네 자손의 땅의 티끌같이 되어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내가 네게 약속한 이 모든 것을 다 이루리라
너무도 신령한 경험이었고 축복이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여호와,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비 이삭의 하나님으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여호와께서 야곱의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해 주셧다.
그리고 땅에 대한 축복, 후손에 대한 축복을 하셨고 그와 그 후손으로 천하만민이 복을 받도록 하시겠다고 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을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 모든 약속을 이루시기까지 하나님이 결코 야곱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는 것까지 말씀하셨다.
여러분, 혹시 축복을 받았는데도 축복은커녕 야곱처럼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을 가고 있는가?
들판에서 돌을 베게하고 누워서 밤을 지내야 하는 것 같은 인생길을 가고 있는가?
분명 거기에 하나님의 숨은 은혜가 있음을 믿어라.
따뜻하고 안락한 곳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신령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실 줄 믿어라.
어떤 형태로든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숨겨진 은혜가 있음을 믿어라.
* 속임을 당하는 가운데도 숨은 축복이 있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그의 딸 라헬을 사랑하며 7년을 외삼촌을 섬겼다.
라반은 선량한 고용주가 아니었다. 아마도 7년 동안 매우 혹독하게 일을 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너무나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며칠처럼 여기며 일했다.
그러나 막상 그 날이 되어 잔치까지 배설했지만 밤에 라반은 라헬 대신 그의 언니 레아를 야곱의 침실에 들여보냈다. 야곱은 알지 못하고 그 밤을 레아와 함께 지냈다.
아침에 야곱이 일어나 라헬이 아닌 레아를 보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실망했을가?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치다니, 이렇게 사람을 속이다니..
야곱은 외삼촌에게 항의 했다.
내가 라헬을 위하여 7년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어찌하여 레아를 주셨습니까?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라헬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기도하고 충성을 다 했는데 하나님은 라헬이 아닌 레아를 주실 때가 있다.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께 항의 아닌 항의를 하게 된다.
하나님, 내가 라헬을 얻기 위해 기도해 온 것을 알지 않습니까? 내가 라헬을 얻기 위해 그 수고와 희생을 단 마음으로 인내해 온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라헬이 아닌 레아 입니까?“
그러나 그 속임 속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다.
야곱이 레아를 아내로 얻었기 때문에 야곱의 열두 아들 곧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게 되었다.
특별히 레아를 통해서는 유다와 레위가 나왔다.
유다지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레위지파는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로 선택받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라반은 야곱의 품삯을 정해 놓고도 열 번이나 변경하며 속이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 속임수 속에서도 야곱을 축복하셔서 큰 양떼와 소 떼를 얻게 하셔서 거부가 되게 하셨다.
이처럼 속임 당할 때 억울하고 원통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해도 그 속에 하나님의 숨은 은혜가 있고 오히려 그 속임 당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시고저 하신 모든 축복을 이루어 가신다.
속임 당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숨은 은혜가 있음을 믿고 찬양하라.
* 에서의 위협 속에도 숨은 축복이 있었다.
형 에서의 분노는 야곱의 마음을 항상 누르고 있었다.
20년이 지났건만 에서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야곱이 모든 가족들과 재산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에서가 4백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야곱에게 오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두려워서 얍복 강에 홀로 남아 기도했다.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씨름하듯 축복을 구했다.
드디어 날이 새려고 하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상하게 했다.
그래도 야곱이 놓지 않고 축복을 구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다.
이는 야곱에게 있어 일생 일대의 변화의 사건이었다.
육의 사람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수 있는 영의 사람으로 변화된 놀라운 사건이다.
어떻게 차자가 장자의 축복을 받을수 있는가?
여러분, 아무리 노력해도 차자가 장자가 될 수 있는가? 결코 할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수 있다.
이 사건은 바로 사람으로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다.
야곱은 발뒤꿈치를 잡은자, 또는 속이는 자라는 뜻이 있다. 이스라엘 은 하나님의 왕자 라는 뜻이다.
드디어 그의 육의 사람을 깨뜨리시고 하나님 닮은 영의 사람 왕자로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래서 형과 화해를 하고 평화를 누리게 하셨다.
다음날 해가 뜰 때 야곱은 환도뼈 때문에 절면서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그리고 그 후 일생동안 지팡이를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이는 단순히 야곱이 육체적으로 필요해서 지팡이를 의지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과거에 자기 힘으로 살려고 했던 그가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게 된 것을 뜻한다.
그는 지팡이를 짚으면서 자기의 육의 사람이 깨어진 그것을 자신에게 다시 상기시켰다.
우리도 일생에 단 한번 이런 체험이 있어야 한다.
일생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시간이 지나도 돈으로도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가?
내가 분명하게 말씀 드릴수 있다. 그 문제 가운데도 숨은 은혜가 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으나 하나님으로는 하실수 잇다.
하나님은 우리 육의 사람을 깨뜨리시고 영의 사람을 만드신다.
그런 후에 문제도 해결 해 주신다.
그러나 영의 사람도 육의 사람의 일을 행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분명 약속의 땅 벧엘로 올라가라고 했지만 그는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 땅에 집을 짓고 살다가 딸 디나 때문에 큰 화를 당하고 난 후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그가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집에서 제단을 쌓으며 진정한 영의 사람으로 살게 된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에 대해서 새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엇다.
이 후 죽은줄 알고 있었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또 그가 보낸 수레까지 보았으나 야곱은 덥석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내려가게 되었다. 그만큼 그는 변화 되었다
* 자녀의 문제 속에도 하나님의 숨은 은혜가 있다.
훗날 그의 아들들이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리고는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은 것 같다고 속였다.
야곱이 얼마나 애통했던지 마치 슬피 스올에 내려가는 자 같았다.
그는 이 땅에서는 아무런 낙도 기대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요셉이 종으로 팔려갔기 때문에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될수 있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아버지 야곱과 모든 형제들과 그 자녀들까지 다 애굽으로
데려가 양육하고 돌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애굽에서 야곱의 후손들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신 것이다.
창 15:13-14“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요셉을 잃었을 때의 야곱처럼 자식 때문에 마음 아파 본적이 있는가?
아니 지금 마음 아픈 사람이 있는가/
그 슬픔과 아픔 속에 반드시 하나님의 숨은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라.
3.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
창 47: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의 성품은 변했다. 그는 바로 앞에 서자 바로를 축복했다.
이제 그는 정말 하나님의 왕자 다웠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들에게 의지하기 위해 그 땅을 찾아온 힘없고 늙은 야곱, 절면서 지팡이를 의지하는 야곱이었으나 그의 내면은 하나님의 왕자였다. 감히 대제국의 바로 왕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왕자였다.
야곱이 평화를 누리다. 창37 이후로는 야곱의 고난이 끝나고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애굽에 내려가서 아들 요셉의 봉양을 받으며 17년 동안을 평화로운 인생을 살았다.
그전 까지는 자기 스스로 피곤한 인생길을 가려고 했으나 이후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인 사람으로 평화를 누렸다.
야곱이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축복했다.
야곱의 마지막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그 땅에 묻어 달라고 요셉에게 맹세하게 하고
지팡이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잠들었다.
히 11: 21 그가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다고 했다.
이는 육의 사람 야곱을 쳐서 영의 사람 만드신 것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도 야곱처럼 되어지길 원한다.
하나님 닮은 성품의 사람으로 변하고 평화를 누리며 자녀들을 축복하고 약속의 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
야곱은 죽음 이후에도 축복을 누렸다.
그는 죽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 막벨라 굴에 조상들과 함께 안장되었다.
그의 인생의 끝은 그야말로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인생을 happy end 로 끝나게 되엇다.
축복 속에도 고난은 있다. 혹시 고난 가운데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란다.
그러나 단순히 위로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다.
고난 속에 숨은 은혜를 받아 누리기시 바란다. 축복 속에는 고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