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더 깊이 압시다 빌 3:7-11
예수를 더 깊이 압시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렇다. 이 세상일도, 세상 지식도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나 세상 지식은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진정한 힘이다.
예수를 아는 것보다 더 큰 힘은 없다.
예수를 아는 것보다 더 큰 지식은 없다.
예수를 아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화가 담겨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지혜롭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인생의 근본 목적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구원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인간 내면의 두려움, 불안, 죄의식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영원을 알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된다.
본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했다.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최고의 지식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모든 지식의 근본이 되는 것, 모든 지식의 원천이 되는 유일한 지식 이라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해서 다른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겼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날 때부터 두 손을 불끈 쥐고 태어나는 것은 날 때부터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일생 두 손을 불끈 쥐고 무엇인가를 얻고자 투쟁하지만 결국 떠날 때에는 두 손을 펴고 모든 것을 놓고 죽는다고 한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는 가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진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살아가는가?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가?
여러분은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을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그리고 예수를 더 깊이 알기 위한 열정을 품는 이 시간이 되기 바란다.
죤 비비어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다.
어느 날 몇 년 동안 해 오던 대로 큰 소리로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하고 수 많은 사람을 해방시키며 수많은 사람을 치유하지만 너 자신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수도 있다. 가롯 유다도 그랬다. ”
그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에 깊은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힘을 모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그 때 하나님의 대답이 더 없이 뚜렷하게 들렸다.
‘나를 친밀히 아는 것이다.“
그 후 성경공부를 하면서 다윗과 모세와 바울을 비롯한 믿음의 선배들의 가장 큰 소망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매일 새벽 그의 주된 기도는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
“하나님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께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십시오
제게 당신의 도를 가르치시고 제 삶이 당신께 기쁨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가 바뀌면서 그의 삶이 자기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바뀌었고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나는 그의 간증을 읽고 도전도 받고 공감도 했다.
나 역시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려고 기도하면서 애 쓸 때 가장 그리스도인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을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예수를 더 깊이 알아야 한다.
8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을 발견했다.
진짜 그리스도를 알면 다른 모든 것을 해로 여길뿐 아니라 배설물 같이 하찮게 여기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얻기 위하여 다른 것은 오히려 거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바울은 과거에 자랑하던 그의 출신 지파, 가문, 배경, 학식, 종교적 열심도 다 해로 여겼다.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렷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얻기 위해 모든 다른 것을 마치 배설물처럼 버렸다.
그만큼 그는 예수를 좀 더 알고 예수를 얻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도 예수를 좀 더 깊이 알기 원한다.
* 먼저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신약뿐 아니라 구약도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씀한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도 성경이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령이 알게 해 주시지 않으면 지식적으로만 알게 된다.
* 성령께서 알게 해 주셔야 한다.
성령은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을 알게 해 주시는 진리의 영이시다.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이 알게 해 주시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 이상이다.
성령이 그리스도을 알게 해 주시면 인격적으로 알게 된다.
인격적으로 알아야 진짜 아는 것이다.
지식적으로도 알게 해 주시고 감정적으로도 느끼게 해 주시고 의지적으로도 믿게 해주신다.
성령이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실 때는 믿음도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주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으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한다.
귀신도 지식적으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안다고 했다.
인격적으로 알 때 그리스도의 영향이 나타난다.
인격적으로 믿는 믿음이 구원을 얻는다.
* 삶으로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알아도 날마다 또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각을 알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있는 자라도 날마다 그리스도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보지 아니하면
자기 마음대로 살수가 있다.
이런 사람의 삶은 그리스도의 생명력도 지혜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고 자기만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을 알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구해야 한다.
날마다 그의 뜻을 구하고 날마다 그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
그럴 때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게 되고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게 되고
그리스도가 삶의 주인이 되셔서 살아 주신다.
바울은 부활의 권능과 고난을 삶으로 경험하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으려 하므로 부활의 권능을 경험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내어 놓으므로 더욱 부활의 권능을 체험했다.
우리가 예수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의 삶을 살아 보아야 한다.
예수의 사랑을 알려면 우리 자신이 예수님처럼 사랑 때문에 희생해 보아야 알수 있다.
예수의 부활의 능력을 알려면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해 보아야 알 수 있다.
왜 사도들을 통하여 부활의 권능이 그처럼 많이 나타났는가?
그것은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기를 죽음에 내어 놓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 부활의 권능이 나타날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권능이 나타나지 않을수 없다.
2. 예수를 알수록 예수의 삶을 살게 된다.
10-11 절 ...“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예수를 알면 예수를 얻게 된다.
이보다 더 놀라운 복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를 얻는 것은 예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예수를 얻는 다는 것은 상호소유의 신비로운 원리를 말씀하고 있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를 더 깊이 알수록 예수님과 연합된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과 연합된 삶을 살수록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바르고 풍성하게 살게 된다.
예수님과 연합된 삶을 살수록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과 그 풍성한 은혜로 살게 된다.
예수 안에서 발견되게 하려 함이란 말은 그가 믿음으로 얻은 의를 설명한 것이다.
9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자가 되기도 하고 그 고난 속에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자가 된다.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부활의 권능으로 고난을 이길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없다.
실제로 부활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당할 때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제자들이 부활의 능력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으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정말 주님을 위해 죽으려 해 보라.
부활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길을 가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진리를 따라 살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되고 그 나라를 얻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매일 그리스도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스도의 뜻을 알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해 주신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해 주시고 변하게 해 주신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죄를 끊게 된다.
죄 때문에 근심하게 된다.
전에는 죄에 대한 근심이 주님께 버림받을 가봐, 주님이 쓰시지 않을가봐 주님께 징계 받을가봐
하는 근심이었다.
이것은 나 중심적인 근심이었고 나에 대한 근심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게 된 후에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때문에 근심하게 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 근심하게 된다.
이는 주님 중심으로 근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근심이다. ( 고후 7:9-10)
어떤 분이 사역자가 된 후에도 오랜 중독에서 놓여나지 못했다.
능력있는 치유 사역자 한테 믿고 기도 받았으나 해결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좀 더 알기 위해 힘쓰고 예수와 친밀하게 지내다 보니 중독에서 해방되었다.
그가 주님께 물었다. “그 때 치유 사역자 한테 기도받을때는 왜 고쳐 주지 않으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시길 “ 그 때 네가 중독에서 놓여나길 원한 것은 너 자신 때문에, 또 너의 사역 때문에 근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의 그 죄 때문에 내가 마음 아파하는 것을 인하여 네가 근심하지 않느냐?” 하셨다.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되는 것이 죄를 끊게 하는 힘이 되고, 더 깊은 은혜의 자리에 나가게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힘의 원천이다.
우리가 예수를 인격적으로 알면 예수로 살게 된다.
예수 닮은 제자로 살 수 있게 된다.
예수의 성품, 예수의 인격을 나타내는 제자로 살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예수로 살면 예수의 기쁨 평안 부요함을 누리며 살게 된다.
예수의 지혜 능력으로 살게 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는 담대함과 능력의 사람들이 되었다.
우리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 원하는가?
예수가 나타나는 교회 되기 원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었다.
오늘도 예수를 인격적으로 아는 사람들, 예수로 사는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나타난다.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놀라운 사람이 될 것을 예언하셨다.
다니엘서 11:32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말세에 핍박과 속임과 환난이 있어도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고 하셨다.
강하여 용맹을 떨치는 놀라운 힘의 원천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세에 강하고 용맹을 떨치는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를 더 깊이 알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자.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알자.
삶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알자.
예수를 아는 자들이 이 시대에 강하고 용맹을 떨치는 예수의 사람들이 된다.
예수를 더 깊이 알기 위해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