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과 복 받은 사람들 이사야 9:1-7
지난 주일에는 성탄과 예배한 사람들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 성탄과 복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본문은 주전 8세기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하신 메시야 예언의 말씀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매우 어둡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암울한 상태였다.
그 중에도 특별히 스불론과 납달리가 가장 큰 흑암 중에 있었고 가장 고통과 멸시를 받았다.
원래 스불론과 납달리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지파였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후에 땅을 분배할 때 그 두 지파에게는 북쪽 변두리 땅을 분배했다.
북방경계 지역이다 보니 자연히 외적의 침략을 가장 먼저 받게 되고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당했다.
늘 외적들의 말발굽에 짓밟히며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과 고통에 시달렸다.
또한 자연히 이방 사람들과 혼혈이 되어서 민족적 정체성도 흐려졌다.
유대인들은 민족의식, 특히 선민 사상이 강했기 때문에 이러한 스불론 납달리 사람들을 멸시하고 심지어 이방인 취급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영적으로도 흑암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점점 우상을 향했다.
이사야서 8장에 보면 그들이 신접한 자를 찾아서 물어보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책망하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고통을 주셨다.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다”고 하신다.
참으로 어디를 봐도 흑암 뿐이요 소망이 없는 스불론과 납달리에
하나님은 오늘 복된 회복의 소식을 선포하신다.
혹시 여러분 중에 스불론 납달리 의 어두운 이야기가 내 인생 이야기 같다고 생각되는 분이 있는가?
오늘의 이 복된 소식이 바로 당신을 위한 소식이다.
스불론과 납달리를 향하여 선포하신 이 good news 는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것이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good news 다. 믿습니까?
복된 회복의 소식이다.
1 절- 2절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복된 소식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의의 빛으로 오셔서 흑암의 고통을 물러가게 하셨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사망의 그늘진 땅에 사는 자들에게 빛이 되셨다.
예수님이 오시므로 흑암 대신에 빛을,
사망 대신에 생명을,
멸시 대신에 영광을,
고통 대신에 큰 즐거움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한 아기, 한 아들, 곧 메시야를 통하여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여러분, 전기가 나가서 캄캄한 밤을 지나 본적이 더러 있을 것이다.
그 때 갑자기 전깃불이 들어오면 자신도 모르게 와- 하고 소리치며 반가워한다.
잠시 어두운 것도 이처럼 힘든다.
스불론 납달리는 그런 흑암이 아니라 근본적인 흑암에서 고통당하고 있었다.
근본적인 흑암은 빛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다.
근본적인 흑암은 사탄의 요소다.
근본적인 죄, 사망, 고통, 불행, 모든 저주다.
이런 근본적인 흑암에서 고통 당하고 잇떤 스불론과 납달리에 큰 빛이 비치었다.
소망이라고는 전혀 없던 그들에게 큰 빛이 비치었다.
이 빛은 바로 메시야 시다. 이 빛이 비치므로 어떻게 회복하시는가?
* 멸시 받던 땅을 영화롭게 하신다.
1절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스불론과 납달리는 땅 까지 멸시 받던 곳이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 두로의 히람왕이 백향목을 공급햇다.
솔로몬은 감사의 표시로 이 지역의 여러 성읍들을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히람왕은 그 성읍들을 둘러보고는 너무 형편없다고 생각했던지 솔로몬에게 도로 돌려주었다.
그래서 솔로몬왕은 그 지역에 성읍들을 건축하고 사람들을 이주를 시켜서 살게 했다.
그만큼 이 땅은 형편 없던 곳이다.
그런데 거기 살고 있던 스불론 납달리 사람들 때문에 더욱 그 땅은 멸시를 받았다.
하나님은 그런 땅까지 영화롭게 하신다. 어떻게?
메시야가 오셔서 그 땅 위를 걸어다니셨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그 땅 위를 걸어다니셨다는 것만으로도 그 땅은 영화롭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많이 사역하셨다.
예수님은 그 땅 위를 밟고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고 그 땅위를 밟고 다니시며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좇아내시고 죽은자들을 살리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 부분 이 갈릴리 지역 출신이다.
지금도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뿐 아니라 갈릴리 지역을 많이 찾고 있다.
참으로 멸시 받던 그 땅이 영화롭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환경과 삶의 모든 영역까지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회복의 복음은 사람만 아니라 땅과 환경까지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까지 변화시켜 주신다.
멸시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영화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 창성케 하신다.
3절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창성케 하신다는 것은 강성해진다. 번성한다는 뜻이다.
힘도 세력도 영향력도 더 강해지고 번성한다는 뜻이다.
그 나라가 창성케 되리라고 하신 것은 개인 뿐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이 많아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창성해 질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창성해지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압제하고 멸하려고 해도 기독교는 더 강해지고 복음은 날로 더 창성해진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가정이 흔들리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회복하시면 창성케 된다.
어떤 면에서 창성하지 못하면 주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면 다시 창성케 해 주신다.
과테말라의 알몰롱가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한때 과테말라에서 가장 가난한 농촌이었고 우상숭배, 마약, 알콜중독자, 창녀, 폭력배들로 들끓었고 감옥이 차고 넘치던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핍박과 사탄의 도전에서도 교회가 놀랍게 자라갔다.
사람들이 점점 교회로 향하게 되고 변화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92 %가 진짜 예수쟁이가 되었다.
사람들이 변하고 감옥이 없어졌다.
그 땅까지도 하나님이 회복하셨다.
과거 알몰롱가 농작물의 소출은 빈약했었는데 지금은 그 땅을 회복하셔서 얼마나 소출이 풍성한지,
과거에는 한 주에 3 추럭 정도 소출을 얻었는데 지금은 한 주에 300 내지 400 추럭의 농산물 소출을 수확하고 있다. 그 품질이 우수하여 중남미뿐 아니라 세계로 수출된다고 한다.
그런데 알몰롱가 마을이 아닌 바로 인접한 땅은 여전히 피폐하다고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멸시 받던 땅 까지 영화롭게 하시고 창성케 하신다.
* 즐거움을 주신다.
3절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농부는 추수가 제일 큰 즐거움이다. 특별히 수확이 많으면 농부의 즐거움은 이루 말로 다할수 없다.
군인에게는 승리가 제일 큰 즐거움이다. 전쟁에 승리하고 탈취한 전리품을 나눌 때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수 없다.
즐거움 이라는 말이 4 번이나 나온다.
웃음을 잃고 있던 스볼론 납달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웃음과 즐거움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슬퍼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화관을 씌워 주신다.
하나님은 근심과 슬픔 대신에 희락의 기름을 발라 주시고 찬송의 옷을 입혀주신다.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우리 하나님은 기쁨이 충만하시다.
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
* 해방을 주신다.
4 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미디안의 날이라는 것은 사사시대 때 기드온의 이야기다.
당시 미디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은 추수도 많이 하지 못했거니와 추수한 식량도 빼앗겼다.
그래서 몰래 타작을 숨어서 해야 했다.
그들은 그 곡식으로 간신히 먹고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이것이 스볼론 납달리의 삶이엇고 지금도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의 삶이다.
그런데 기드온의 300 명의 용사를 통하여 미디안의 수십만의 군대를 격파하고 이스라엘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스불론 납달리를 자유케 하시고 해방을 주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탄에 매인 자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신다.
죄와 인생의 짐으로 무겁게 멘 멍에를 벗어 던지게 하신다.
어깨에 놓인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꺽어 버린다. 할렐루야
* 평강을 주신다.
5절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스볼론 납달리는 늘 크고 작은 전쟁 때문에 어지럽게 싸우는 군인들의 갑옷과 피 묻은 옷을 보면서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그런 옷들을 불에 태워 버리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하여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평화를 주실 것을 뜻한다.
2. 한 아기, 한 아들을 주셔서 회복하신다.
6절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이처럼 놀라운 회복을 어떻게 하시는가? 한 아기 한 아들을 통해서 하신다.
“이는” 이라고 하신 것은 앞에 말씀하신 모든 회복,
땅을 영화롭게 하심, 창성케 하심, 해방을 주심, 즐거움을 주심 .. 이 모든 것을 뜻하는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다 같이 해 봅시다.
“이는 우리에게 한 아기가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다.”
스불론 납달리의 큰 흑암에 비추어 주신 그 빛은 바로 이 한 아기 한 아들이시다.
한 아기, 곧 성탄에 오신 아기 예수님이시다.
한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 아기가 바로 빛으로 오셨다.
그 아기가 모든 즐거움의 근원이시다.
그 아기가 창성함을 주신다.
그 아기가 자유와 해방을 주신다.
그 아기가 땅과 환경과 우리의 모든 영역을 영광스럽게 하신다.
한 아기가 누구에게 낳다고 하시는가? “우리에게 ”
스불론과 납달리만 아니라 “우리에게 나셨다”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이 말씀을 믿는 우리에게
할렐루야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이 바로 우리를 위한 복음이라고 말씀드렸다.
* 그 한 아기가 어떤 분인가?
6절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정사는 모든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씀이다.
탄생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모든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다. 놀라운 분이라는 뜻이다.
얼마나 놀라운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어서 오셨다.
얼마나 놀라운지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셨다.
얼마나 놀라운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얼마나 놀라운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얼마나 놀라운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시다.
그의 이름은 모사다.
모사는 책사 라는 뜻이다. 지혜자, 안내자. 카운슬러 의 뜻이다.
유비에게 제갈공명이 책사였듯이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책사이시고
안내자이시고 위로자이시고 카운슬러 이시다.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독생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독생자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으나 그 분은 여전히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사탄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운명을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나의 아버지시다.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그 분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시다.
그 분은 평강의 왕이시다.
그 분은 평강으로 다스리신다.
그 분의 지배를 받으면 평강이 넘친다.
* 그의 나라는 영원하다.
7절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예수님 아기로 오셔서 시작된 그 나라는 예수님 재림으로 완성된다.
그 나라는 영원하다.
세상 나라는 정사와 평강이 잠시 있다가 없어지지만
예수님의 정사와 평강은 날로 더해 가고 무궁하다.
에수님은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시고 다스릴 것이다.
*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신다.
7절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아들을 보내신 것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이루셨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시고 듣게 하신것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이루셨다.
우리가 믿고 구원받은 것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이루셨다.
앞으로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이루신다.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자녀 삼으셨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며 축복하고 계신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마침내 우리를 그 나라에 가게 할 것이다.
성탄은 바로 복받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할렐루야
Christmas and blessed people Isaiah 9: 1-7
9 [a]Nevertheless, there will be no more gloom for those who were in distress. In the past he humbled the land of Zebulun and the land of Naphtali, but in the future he will honor Galilee of the nations, by the Way of the Sea, beyond the Jordan—
2 The people walking in darkness have seen a great light;
on those living in the land of deep darkness a light has dawned.
3 You have enlarged the nation and increased their joy;
they rejoice before you as people rejoice at the harvest,
as warriors rejoice when dividing the plunder.
4 For as in the day of Midian’s defeat, you have shattered
the yoke that burdens them, the bar across their shoulders,
the rod of their oppressor.
5 Every warrior’s boot used in battle and every garment rolled in blood
will be destined for burning, will be fuel for the fire.
6 For to us a child is born, 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will be on his shoulders.
And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7 Of the greatness of his government and peace there will be no end.
He will reign on David’s throne and over his kingdom, establishing and upholding it
with justice and righteousness from that time on and forever.
The zeal of the Lord Almighty will accomplish this.
Last Sunday I spoke about Christmas and worshipers.
Today, through the text, I want to talk about Christmas and the blessed people.
The main text, it is the prophecy of the Messiah through Isaiah who ministered in the eighth century.
At that time, the situation in Israel was very dark and desperate.
Among them, especially the tribes of Zebulun and Naphtali were among the greatest darkness,the most suffering, and contempt.
From the first time of Israel’s history, Zebulun and Naphtali and Naphtali were tribes that had not received much attention among the twelve tribes of Israel.
When Joshua distributed the land after the conquest of Canaan, he distributed to the two tribes the land on the north side, boader side.
As it is the northern border area, those to tribes were the first to receive the outward invasion and the most to suffer the damage of the war.
They were always trampled by the Calvary army of the outsiders and suffered the horrors of war, hunger, and suffering.
It also naturally became a mixed race with the peoples of the Gentiles, and its national identity became blurred.
As a result, the Jews, who had a strong sense of ethnic identity as God’s chosen people, despised Zebulun and Naphtali and Naphtali, and treated them as Gentiles.